옹이

by 엘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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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꼽을 정도로 친한 남편의 대학교 동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위해 건국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근 이십 년 만에 친구들이 하나, 둘 속속들이 모였다. 남편은 먼저 가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 또한 그와 함께 해온 세월이 있기에 아이들을 챙기고 저녁 즈음에 출발하여 얼굴을 비추었다. 아이들 챙기랴, 수업하랴 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상주는 나의 출현이 뜻밖이었는지 몹시도 고마워했다. 남편은 각자의 가정을 꾸리느라 바빠진 이십 대 시절 동창들과 간만의 회포를 푸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남편과 연애 초반, 나도 그의 모임에 얼굴을 비춘 적이 있기에 나의 등장은 좌중을 잠시 정적에 휩싸이게 했다. 세월의 간극을 멈추게 하는 듯한 재회였다.


이십 대 중반 그가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나는 겉돌았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의 친한 친구들이 그렇듯 편하니까 거칠게 주고받는 말투며, 시시한 농담 따먹기 같은 유치한 이야기들이며, 내일이 없을 듯이 주고받는 술잔 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부질없고 쓸데없어 보이기만 하여 허락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취를 했기에 가족처럼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었고, 나는 통학을 했기에 시간 맞춰 집에 따박따박 귀가했어야 했다. 그런 분위기를 접해본 적이 없으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남편에게 '자기 친구들은 좀 천박한 것 같아.'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사회성 떨어지는 까칠한 여자였다. 그런 식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를 몇 번이었고, 그들은 그와 내가 결국 헤어지지나 않을까 되려 더 옆에서 전전긍긍 혹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여자가 이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고, 이렇게 남편 지인의 장례식까지 홀로 찾아왔다. 남편과 그의 친구들은 나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새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밥과 국을 챙겨다 주었다. 그 시절 만났던 언니의 옆 자리에 앉았다. 언니도 이제 아이가 셋 있는 엄마가 되었다. 요즘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는 맞장구를 치고 깔깔 웃고 있다. 모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또 때로는 이 거친 세상을 힘겹게 헤쳐 나가는 사회인들이다. 오빠들의 말장난에 맞받아 치기도 하고, 언니들과 함께 놀리기도 한다. 의무와 책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이십 대 그 시절로 돌아간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아도 서운하거나 마음 상할 일도 없다.


이십 년이 흐르고 마흔이 넘어 다시 만난 사람들. 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여기저기 멍이 들었던 가슴을 하나씩 치유해 오고 있었다. 그 구멍과 멍이 메워지면서 조금은 더 넓게 품어주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날을 세우던 내가 이것도 저것도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혼자서 고고한 척, 자신만의 도도한 이상을 향해 동떨어진 세계에서 홀로 외로워하던 내가 여기저기 다른 세계에 발 담그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며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만 돋보이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보다, 상대방을 더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말을 할 줄도 알게 되었다. 오직 내 공부만 하며 목표를 쫓던 경주마가 초원을 자유롭게 달리는 맛을 아는 야생마가 되어간다.


책에서 읽은 대로 곧은 사람이 되겠다 했는데, 삶은 나를 굴곡지게 했고 옹이를 만들어 모양을 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름아닌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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