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내 글에 대한 명분

by 엘샤랄라

'발행'해야 하는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나의 경험들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그 경험들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 경험들 '덕분'이라 생각한 적은 드물었다. 내가 여태껏 했던 경험들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기에 어디서부터 이어 붙여야 좋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힘겨웠던 시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과정이 상처를 꿰매는 작업이었던 듯하다.


상처를 막 꿰낸 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바로 그 '괴물'의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비록 외형은 거칠기 짝이 없었으나, 새 생명을 선사받은 아이러니.


보통은 힘들었다 생각되는 이야기보다 즐거워서 혹은 행복에 겨워서 남들 앞에 내세우기 좋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편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오히려 나의 첫 전자책, <갓생 엄마 만드는 인생 비법서>에 이년 전 이맘때 꼬박 3박 4일을 악착같이 방에 틀어 박혀 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조금은 더 진실한 나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의미 없이 굴러 다니던 진주 같은 알알의 경험들은 글쓰기라는 줄을 만나 온전한 목걸이로 하나씩 엮였다. 그 목걸이를 목에 걸자, 나는 더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냥 '너'라는 사람으로도 괜찮다 말해주는 '인증서'를 받은 기분이랄까.


이후, 나는 나의 어려움과 괴로움, 미움, 반항심, 삐딱함, 기만, 자조, 회의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음을 알았고,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깨닫게 되면서 나 자신을 포박하던 줄을 끊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놀라운 점은 감정을 꽁꽁 묶어 놓았던 줄이 풀렸다 해서 감정까지 미친년 널뛰듯 뛰쳐나가기는커녕, 수긍하고 인정하며 응시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또 때로는 뜨겁게 감정을 일으킨 발단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꾹꾹 눌러 담지 않고 글로서 해방시키게 되었으니, 어찌 계속 글을 쓰지 않겠나. 그런데 그러한 해방감이 다시 나를 구속하게 되는 건 아닌지 다소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나의 사색의 깊이가 생각보다 얕고, 진부한 문장으로 글을 이어나가겠다는 이 뻔뻔함의 두꺼운 낯짝을 이제야 자각하여 서다. 그래서 전에도 독서에 집착하였는데, 더 집착하게 되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지만, 그 와중에 다시 니체의 문장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과정 또한 온전히 나만의 경험이었기에, 나는 당당히 글을 쓸 수 있다. 나에게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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