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나는 <탐구생활>이라는
방학 숙제에 온갖 첨부자료를 붙임으로
그 누구보다 두툼한 '탐구생활'을 자랑하고 싶어서
열심히 도서관을 들락날락 거리며 책을 뒤적였고
바로 그 덕분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비록 그 동기는 불순하기 짝이 없었으나,
책을 가까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봉사 활동 시간도 받고, 도서부 담당 선생님이었던
국어 선생님께 인정도 챙기고, 신간 도서를 제일 먼저
빌려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혜택에 눈이 돌아가
도서부에 들어감으로
책 속에 파묻혀 헤엄쳐 지낼 수 있었다.
비록 도서부를 시작한 동기는
불순하기 짝이 없었으나.
책을 핑계 삼아 소소한 추억을
잔뜩 쌓는 계기가 되었겠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역시
별다르게 구미가 당기는 동아리가 없었거니와
중학교 때 누렸던 바로 그 특혜를 여전히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역시나 '도서부'에 지원하였는데,
운 좋게도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뽑혀서
'동아리 부회장'이라는 직책까지 올랐더랬다.
그리고 그 활동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나의 '입시 원서'의 포트폴리오 한편을 빽빽이
채움으로 '1학기 수시입학'이라는 아주 잠시 있었던
지금 생각하면 학생에게는 꿀 빠는 전형으로
대학문을 여는 행운을 누리게 된 듯하다.
이십 대에는 어떠한가.
장학금 한 번 받아볼까, 좋은 리포트 한 번 써볼까
하는 사심 가득한 의도로 교수님 '강의계획서'에 있는
참고문헌을 모조리 찾아 읽었으며,
삼십 대에는 처음 엄마 되어
아이 둘 잘 키워 보겠다는 지극히 사적인 목표에
혈안이 되어 온갖 육아서를 섭렵하였다.
그리고 마흔,
나는 여전히 책을 읽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꾸만 문장 하나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한다.
문장을 잡고 그 문장에 질질 끌려간다.
이러이러한 책을 읽었다 자신 있게 말은 하지만
행간의 숨은 뜻과 작가의 의도를 모두 파악했다
자신할 수 없기에 일말의 염치는 챙기려고 하는데,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독서에 대한
나의 글은 변명 다음에 또 변명에 불과하겠다.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쌓아 놓고 말았으니.
또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 오고 말았으니.
몰염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