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와 사랑의 연관관계

스물일곱의 내가 정의하는 사랑이란,

by 밍숭맹숭한 파스타

제목부터 참 뜬금없다. 가위바위보와 사랑의 연관관계라니,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이 뜬금없는 제목을 짓기까지 여러 사고회로를 거쳤다. '인생이 뭘까'를 고민하던 20대 초중반을 지나 나는 지금 '내게 사랑이 뭘까'를 고민하는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내가 정의해 온 인생이란, 날개 없이 태어난 인간인 나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전생애를 걸쳐 이루어지는 하나의 작업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랑이란 게 나에게 뭔지 정말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면 그게 사랑인 것도 같았고, 또 어느 날은 햇빛에 반사된 물표면이 반짝이면 그게 사랑인 것도 같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그래서 우선 사랑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사랑

1. 이성(異性)의 상대에게 성적(性的)으로 이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 드물게, 좋아하는 상대를 가리키기도 함. 애정.

2. 부모나 스승, 또는 신(神)이나 윗사람이 자식이나 제자, 또는 인간이나 아랫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위하는 마음의 상태. 때로, 자식이나 제자가 부모나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함.

3. 남을 돕고 이해하고 가까이하려는 마음.


세 가지 뜻을 종합해 보자면 결국 사랑은 어떤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는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나는 소중한 대상에게 어떻게 대할까 생각해 보았다. 한 번 추려보니 몇 가지가 정리되었다.


첫 번째, 나는 소중한 대상에게 자꾸만 잠을 권한다. 잘 시간이 되면 자라고 하고, 잘 시간이 아니어도 졸려하면 자라고 한다. 이건 내가 잠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행동양상이기도 하다. 잠드는 일이 매일 밤의 도전과제인 나에게 잘 자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재산이다. 잘 자는 것에 대한 가치가 나에게는 희소한 가치이니까 내가 소중히 여기는 대상도 이 소중한 걸 가졌으면 하는 마음인 거다.

아이유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본인은 잠들기 힘든 사람으로서 새벽에 연락하던 상대가 먼저 잠들어버리면 그게 그렇게 야속하더란다. 그래서 본인은 본인보다 먼저 잠들어도 얄미운 마음이 들지 않는 상대를 사랑하는 상대라 정의한다고 했다. 나 또한 그렇다. 나 대신이라도 잘 잤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대상이 나에게는 사랑하는 대상인 듯하다. 깨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지기를 바라며 가만히 옆을 지키고 싶은 대상. 잠에서 깼을 때는 옆을 지키던 내 얼굴을 보며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기를 바라는 대상. 나는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 같다.


두 번째, 나는 소중한 대상에게 자꾸만 안기려고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체온을 나누는 것이 좋고, 상대의 숨소리를 듣는 게 좋을 뿐이다.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나 또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단순하고 본능적인가. 어린아이가 보호자의 체온을 느끼며 안정을 찾듯 포옹을 하면 내 안의 가장 어린 내가 불안을 해소한다. 가장 약하고 본능에 충실한 내가 생기를 되찾는다. 상대를 안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영원이란 말만큼 손에 담긴 물 같은 말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 영원이란 말을 믿고 싶어 진다. 그 찰나의 믿음이라도 괜찮으니 나는 그저 그런 순간을 갖고 싶은 것뿐이다. 내게 그런 순간을 선사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다. 이제 이 기상천외한 가위바위보와 사랑의 연관관계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나는 사랑이란 단어 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상대에게는 느닷없이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한다. 앞의 두 가지 정리는 내 사랑의 최대 용량이 10이라면, 5-6 정도를 매길 수 있는 대상 앞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는 10을 꽉 채운 대상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다. 특권이라 말하면 조금 웃기긴 하지만 그만큼 내가 잘하지 않는 행동이란 뜻이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청하는 가위바위보만큼 뜬금없고 어이없는 것도 없다. 가위바위보는 보통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대결 수단인데, 정해야 할 무언가도 없는데 갑자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하는 건 도무지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는 행동이다. '도무지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는 행동', 이것이 가위바위보와 사랑의 연관관계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나의 이 별안간 던지는 청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대상. 그 어떤 것도 정의할 필요 없고 분류할 필요도 없는 대상. 나는 지금 나 자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은 가장 날 것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대상. 나는 그런 대상을 나의 온 마음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대상,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나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다. 이 특별하지 않은 사랑을 나는 그저 '가위바위보'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 '당신에게 사랑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할 것이다. '가위바위보', 그저 '가위바위보'라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