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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Mar 31. 2017

크메르 쿠킹 스쿨

  나리 키친(Nary kitchen)이라는 캄보디아식 식당에서 하는 요리 교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인 툿은 내게 레시피 책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입구에 있는 목재 테이블에 앉아서 그가 준 책을 읽었다. 

  잠시 후 에밀리라는 동양계 미국인 여자가 들어왔다.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 그리고 슬링백을 메고 있었다. 나와 함께 요리 강습을 들을 학생이었다. 그녀는 배낭 여행객으로 태국에 가기 전에 잠시 바탐방에 들렀다고 했다. 그녀가 도착하자 톳은 우리를 요리 교실로 안내했다. 우린 간단하게 요리 강습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툿의 보조인 심과 함께  프사 낫으로 장을 보러 감. ‘프사 낫은 프랑스 식민지 때 지어진 건물로…’ 심이 이 시장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곤 시장 안을 돌면서 시장에서 파는 고기, 야채, 해산물, 향신료, 등에 대해 꼼꼼하게 알려줬다. ‘돼지 머리는 결혼식 때 사용해요.’, ‘우린 소, 돼지 내장도 먹어요, 그리고 내장이 고기보다 더 비싸고 맛있어요.’, ‘이건 돼지고기고 이건 소고기예요. 어때요 색깔이 다르죠?’, ‘이리로 와봐요. 오리알과 계란이에요. 오리 알은 희고, 계란은 노래요. 여기 오리 알에 붙어 있는 검은 건 재인데, 이게 오리 알에 간을 해주고 풍미를 더하죠. 아 여기 백조 알도 있네요. 좀 더 크고 단단하죠? 이건 좀 비싸요.’, ‘여기 두 종류의 게가 있어요. 하나는 바다에서 왔고 하나는 논에서 왔어요. 논게는 벼를 하도 잘라 대서 골칫거리예요.’, ‘이 새우들은 강가에 그물을 쳐서 잡은 거예요. 그리고 여기 보이는 메기로 오늘 피시 아목을 만들게 될 거예요.’, ‘물론 생선은 이미 손질해서 주방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코코넛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요. 안에 있는 물은 마시고, 흰 내막은 그냥 먹기도 하고, 말려서 코코넛 가루를 만들기도 하고 즙을 내 코코넛 밀크나 오일을 만들어요. 그리고 겉에 껍질도 버리지 않고 공예품을 만드는 데 이용해요. 참 쓸모가 많죠.’ 심은 코코넛 밀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착즙기에서 뽀얗고 걸쭉한 액체가 나왔다. 에밀리는 옆에서 연신 ‘쿨(Cool)~, 어썸(awesome)~” 하며 호응했다. 그녀는 매우 신나 보였다. 그 밖에도 레몬 그레이스(피시 아목에 들어감),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들을 보여줬다.  

  요리 교실은 작고, 아늑해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음식을 만들면 캄보디아 어머니들이 만들어주는 집 밥이 탄생할 것 같았다. 우린 먼저 툿의 지시대로 싱크대로 가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준비된 앞치마와 위생모를 착용했다. 

  “오늘 우리는 피시 아목(Fish Amok), 튀긴 스프링롤(Fried spring roll), 소고기 록락(Beef lok lak), 바나나로 만든 디저트까지 총 4가지 메뉴를 배워볼 거예요. 먼저 아목에 넣을 페이스트를 만들어 봅시다.” 톳은 능숙한 영어로 간단한 수업내용을 설명한 후 곧바로 실습을 시작했다. 

  나와 에밀리는 톳의 지시에 따라 레몬 그레이스와 말린 파파야 껍질, 새우 페스트와 각종 향신료를 작은 절구에 넣고 빻기 시작했다. 내가 조심성 있게 재료를 빻고 있자 톳이 내 옆으로 와서 절구가 쪼개질 정도로 세게 빻으라며 시범을 보여줬다. 어느덧 완성된 페이스트에 닭 육수를 넣고 저으니 카레처럼 생긴 걸쭉한 소스가 만들어졌다. 그다음으로 미리 뼈를 발라놓은 붉은 생선을 편으로 썰고 소스에 재웠다. 마지막으로 바나나 잎으로 사각형 용기를 만들어 그곳에 캐퍼 잎을 깐 후 소스에 재운 생선을 넣고 찜기에 올렸다. 

  곧이어 스프링롤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먼저 톳의 시범대로 고기를 다지고 타라(Tara), 당근 등을 강판에 간 후 닭 육수를 약간과 섞어 버무렸다. 그리고 정확히 세 등분한 후 쌀 전병에 길게 편 후 김밥을 말 듯이 동그랗게 말았다. 처음 해보는 거라 그런지 스프링롤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옆에 에밀리의 스프링롤은 빼빼로처럼 길고 얇아 톳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다들 이 요리 교실은 어떻게 알고 왔어요?” 톳이 물었다. 

  “저는 바탐방에 지내면서 이 레스토랑을 알게 됐어요.” 내가 말했다. 

  “저는 트립 어드바이저를 보다가 리뷰가 좋길래 와봤어요.” 에밀리가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톳이 에밀리의 대답에 관심을 보였다. 

  톳은 자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트립 어드바이저에 대해서 예찬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쿠킹 스쿨을 열었을 때는 강습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외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한 번 왔다간 후부터는 강습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들이 트립 어드바이저에 남긴 리뷰를 보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나도 궁금해 리뷰를 찾아봤더니 ‘최고의 경험!’, ‘정말 재밌어요’, ‘에너지가 넘치고 친절한 셰프’ 같이 좋은 말들뿐이었다. 

  최근까지 바탐방의 쿠킹 스쿨은 나리 치킨 하나였다. 하지만 얼마 전 근처에 있는 어떤 레스토랑에서 캄보디아식 쿠킹 스쿨을 열기 시작했다. 톳은 그들이 자신들을 홍보하기 위해 사진을 포토샵으로 꾸미고 트립 어드바이저의 리뷰를 주작으로 만들어 올린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나리 키친의 사진과 리뷰는 모두 쿠킹 스쿨을 들은 사람들이 직접 올리기 때문에 정직하고 믿을 수 있지만 그들의 리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톳은 이 사실을 모르고 그곳에 요리를 배우러 가는 여행객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톳은 흥분한 게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강습을 이어나갔다. 

  다음으로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록락을 만들었다. 미리 상온에 준비해 둔 소고기를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록락은 찹스테이크처럼 깍두기 모양으로 두껍게 썰거나 불고기처럼 얇고 넓게 썰거나 두 가지 방법인데, 이곳에서 얇고 넓게 썰었다. 나는 사실 깍둑 썰기한 소고기로 만든 록락을 더 선호하지만 10달러짜리 쿠킹 클래스에서는 무리일 거라 생각했다. 다 썬 고기에 양념을 넣고 버무린 후 잠시 재워뒀다. 여기에도 닭 육수가 빠지지 않았다. 재운 고기를 한쪽에 두고 우리는 커다란 프라이팬에 3분의 1 정도 찰 만큼 기름을 부은 후 중불로 예열했다. 프라이팬에서 살짝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스프링롤을 먼저 팬에 올렸다. 치익~ 소리를 내며 롤이 닿은 단면 주변으로 기름이 튀기 시작했다. 롤이 풀리지 않게 집게로 계속 고정을 하면서 튀겼다. 냄비 중간에 있는 롤부터 점점 황금빛으로 변하면서 노릇노릇 익기 시작했다. 동시에 식욕을 자극하는 달고 고소한 향도 피어났다. 프라이팬 중간에 있는 롤부터 먼저 뒤집었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잠시 후 다 익은 롤을 키친타월 위에 올려 기름이 빠지게 두었다. 이제 록락을 조리할 차례다. 우리는 톳을 따라서 프라이팬에 남은 기름을 작은 알루미늄 통조림통에 부운 후 센 불에 프라이팬을 달궜다. 팬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소스에 재워놨던 소고기를 넣고 굽기 시작했다. 

  “지금이 중요해요.” 톳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더니 프라이팬을 경사지게 세운 후 불에 대자 프라이팬에 순식간에 불이 붙더니 팬 전체에 불이 붙었다. 잠시 불꽃이 고기를 익히도록 둔 후 물을 뿌려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수증기로 고기를 찌듯이 익혔다. 매우 고난도의 기술이라 우리가 이걸 따라 하는 건 무리였다. 톳은 우리의 자리로 와서 똑같이 고기를 익혀주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프라이팬에 레몬즙을 부어 팬 표면에 묻은 양념과 섞어 졸였다. 고기 위에 졸인 소스를 붓고 그 위에 서니 사이드로 계란 프라이를 올리니 순식간에 록락이 완성됐다. 나와 에밀리는 감탄하여 입을 벌리고 물개 박수를 쳤다.

  이제 플레이팅만 남았다. 흰 사각형 접시를 꺼내 중앙에 쌀밥을 올리고, 각 모서리마다 미리 준비해둔 샐러드(상추 한 잎과 토마토 슬라이스 세 조각, 양파 슬라이스 한 조각), 록락, 찜기에서 꺼낸 아목, 기름이 빠진 스프링 롤, 그리고 칠리소스가 담긴 종지를 두니 순식간에 크메르 음식 3종 세트가 완성됐다. 마치 마법을 보는 듯 순식간에 모든 음식이 완성됐다. 에밀리와 나는 마치 급식소에서 배식을 받은 아이들처럼 완성된 음식이 담긴 접시를 양손으로 들고 밖으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캄보디아 음식을 만들었다는 뿌듯함과 얼른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기대감에 약간 흥분돼 있었다. 옆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던 은색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이 흐뭇한 미소를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들떠서 ‘이거 모두 우리가 만든 거예요’ 라고 말하자 ‘오 그러니? 정말 멋지구나. 그 잎에 쌓인 건 아목이니? 웩, 난 아목을 정말 싫어한단다. 하지만 맛있게 먹으렴.’ 이라는 말을 하며 우리를 칭찬해주었다. 메인을 다 먹고 중간에 만들어 두었던 바나나 디저트를 먹었다. 시작에 비해 아주 빠른 마무리였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 딱 음식 값 정도밖에 안 되는 10달러로 재미있는 요리를 배우고 맛있는 식사까지 할 수 있었다. 트립어드바이저의 리뷰가 모두 과장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순간이었다. 톳이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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