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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Mar 31. 2017

존의 사고

  새벽부터 캄보디아 전통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곳에서만 나는 소리 같지 않았다. 이곳에선 결혼식과 장례식을 하는 경우엔 동네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어떤 것이든 다 허용되는 것 같다. 새벽부터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던지, 집 앞에 커다란 천막을 설치해 그곳을 지날 수 없게 길을 막아도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냥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처음엔 외국인인 내게 결혼식과 장례식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눈에는 비슷한 천막에서 비슷한 전통 음악 소리가 들리고, 비슷한 테이블보를 두른 원탁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비슷한 음식을 먹는 거로 밖에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캄녀는 ‘딱 보면 알겠다’고 했지만 내가 볼 땐 모두 다 비슷해 보였다.

  결혼식과 장례식의 구분은 간단했다. 천막에 분홍색을 비롯한 화려한 색의 꽃이나 리본으로 장식을 했다면 결혼식이고 검은색과 흰색 꽃이나 천 등으로 장식을 했다면 장례식이다. 그리고 결혼식장 하객들의 옷차림은 화려한 반면에 장례식 조문객들은 대부분 흰 옷을 입고 있다. 캄녀는 이렇게 뚜렷하게 둘이 구분되는데 어떻게 차이를 모를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나도 신기하다. 처음엔 이런 차이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요즘 같을 때는 전통 음악 소리만 들려도 장례식이란 걸 알 수 있다. 때를 정할 수 없는 장례식은 우기든 건기든 가려서 할 수 없는 반면 결혼식은 주로 건기에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하루빨리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캄녀와 나는 오랜만에 테레사에서 닥터 후와 점심을 먹었다. 닥터 후는 우리보다 먼저 식당에 도착해 있었고, 웬일인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줬다. 며칠 전 함께 일하던 동료 직원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사고 현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처참했다. 무엇과 정면으로 충돌했는지 사진 속 벤의 운전석과 조수석 자리는 폐차장에 있는 차들처럼 완전히 찌그러졌다.

  이 사고는 신문에 날 정도로 심각했는데, 캄보디아 영자 일간지인 더 프놈펜 포스트(The Phnom Penh Post)에 의하면 이 사고로 두 명의 운전수를 포함한 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사고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 100킬로 이상의 속도로 달리던 벤과 맞은편에서 앞차를 가로지르려고 역주행을 시도하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시신들은 근처의 사원으로 옮겨졌고, 닥터 후는 급히 사원으로 가 동료 직원의 신원을 확인했다. 닥터 후의 동료에게는 어린 쌍둥이 아들이 있다. 매일 쌍둥이 아들의 얘기를 하고, 자신과 붕어빵인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닥터 후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 날이 있다. 사고가 나려고 그랬나 보다 하는 날. 닥터 후의 동료 직원은 사고 당일 날 갑자기 프놈펜에 갈 일이 생겼고, 급하게 표를 구입한 탓에 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앉아야 했다(뒷좌석에는 생존자가 있었다). 우기 치고 비가 잘 내리지 않는 때였지만 그날만은 비가 아주 세차게 내렸다. 한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번에 사고가 난 벤은 우리가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메콩 익스프레스의 것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고 해서 메콩 익스프레스가 무조건 안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이번 사고로 이용객들이 확연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원래 메콩 익스프레스는 사고도 적고, 다른 요금이 저렴한 회사들에 비하면 엄마 젖을 좀 더 먹고 와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린 운전수는 고용하지 않고 벤의 상태도 좋다. 그래서 나와 캄녀도 다른 회사의 낡은 벤 보다 요금이 두 배나 비싸지만 기꺼이 지불하고 이용한다. 서비스 면에서도 간혹 발생하는 불쾌한 상황만 피할 수 있다면 아주 준수한 편이다. 예약한 좌석에 뻔뻔하게 다른 승객을 앉히거나, 에어컨이 고장 났다며 창문을 열어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한다든지, 소개팅에 늦은 사람처럼 앞뒤 안 가리고 사정없이 속도를 높여 달릴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좋은 점도 많다.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고, 와이파이가 되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안전벨트가 있고, 휴게소가 아직 멀리 있는 상황에서도 화장실에 가야 하니 차를 세워달라는 캄녀의 무리한 요구에도 즉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로변에 있는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변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집까지 운전기사가 직접 에스코트해주기도 했다.

  다시 사고 이야기로 돌아가면, 원인은 폭우로 인해 시계(視界)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앞차를 추월한 데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앞에 화물차나 대형 버스가 달리고 있다면(가끔 우차나, 경운기도 있다), 대부분의 차들은 역주행을 시도해 앞차를 추월한다. 상식적으로 이런 경우엔 반대편 차선에 차가 없을 때에 역주행을 하는 게 맞다. 역주행을 하는 게 맞다, 라는 말도 웃기지만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우차같이 느린 게 앞에서 달릴 때 역주행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정신이 나간 것인지, 목숨이 서너 개나 되는 것인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있더라도, 추월할 수 있는 약간의 틈만 있다면 추월을 시도한다. 만약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즉시 속도를 줄이고 추월을 포기해야 하는데, 마치 치킨 게임이라도 하듯 둘 중 누구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무모한 추월을 감행한다.

  충돌 사고 외에도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다 버스나 트럭이 도로를 이탈해 담을 들이받거나 전복되는 사고도 많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사고가 나 찌그러지거나 전복된 차를 보곤 하는데, 이쯤 되면 벤은 목숨 걸고 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고로 변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바탐방 사람들이었다. 오늘따라 많아 보이던 그 장례식들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장례가 아니었던 것이다. 

  “너희도 어디 멀리 갈 땐 조심해라. 자리가 없다고 앞좌석에 타라고 하면 차라리 다음 버스를 알아보는 게 현명한 거야.” 닥터 후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내가 대답했고 캄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존도 사고가 났단다. 요즘 왜 이렇게 다들 사고가 나는 건지 참.”

  “존에겐 무슨 일이 생겼는데요?” 내가 물었다.

  “발목이 부러졌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이때 존을 태운 툭툭이 테레사에 도착했다. 존도 양반은 못 된다. 존은 왼쪽 발목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툭툭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내렸다. 며칠 전 전자제품 매장에 마우스를 사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매장 문턱에 신발 코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발목이 부러졌지만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고 깁스만 했다고 했다. 목발을 짚고도 간신히 한 발 한 발 내딛는 존에게 닥터 후는 그냥 집에서 가만히 있지 왜 나왔느냐고 핀잔을 줬다. 존은 불편하지만 밖에 나와야 덜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시장에 가야 신선한 과일을 살 수 있다며 화를 냈다. 존의 과일 사랑은 남달라서 웬만해서는 사놓은 지 며칠 된 과일이나 남들이 사다 주는 건 잘 먹지 않는다. 고집불통 할아버지의 전형이다. 닥터 후가 한 번에 사다 놓고 먹으라고 말하지만 뒷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럴 때 꼭 둘이 부부 같다.

  존은 발목이 부러진 이유를 자신의 부주의나 나이가 들면서 무뎌진 순발력 때문이 아닌 전자제품 매장 입구 문턱의 조잡한 만듦새 때문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호주나 한국, 일본 같은 나라에 있는 매장이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발을 헛디뎌 불행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볼 땐 그냥 똑같은 문턱 같았지만, 나는 굳이 존의 신경을 긁고 싶지 않아 존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너희 혹시 따따가 무슨 말인지 아니?” 닥터 후가 존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말했다. 

  동남아에서 길을 걷다 보면 돈 많은 백인 할아버지들이 어리고 예쁜 현지인들과 애인처럼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할아버지들을 캄보디아에서는 ‘따다’ 라고 부른다. ‘따’는 캄보디아 말로 할아버지라는 의미다. 이 ‘따’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비꼬는 의미로 부르는 것이다. 실제로 화장을 진하게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어린 현지인 여성들과 연인처럼 붙어 다니는 따따의 모습을 보면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따따라는 말의 어감 자체는 상당히 귀엽다. 

  닥터 후가 존의 눈치를 본 건 존이 바로 그 따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화를 내는 존이 괘씸해 홧김에 이 사실을 우리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대략 30살 차이가 나는 태국인 여자와 사귀고 있는 존은 자신의 조국인 호주나 서양의 문화권에선(백인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어린 여자들과 사귀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볼 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반문해도 그는 아니라고 했다. 또 고집이다. 게다가 그는 캄보디아를 비롯해 동남아 사람들도 노인들이 어린 여자와 사귀거나 결혼하는 걸 특별히 문제 삼는 것 같지는 않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물론 젊은 여자와 사는 노인들을 종종 보기는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다면 아무도 그들을 따따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발목이 부러지기 얼마 전 존은 자신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울까 걱정하는 애인에게 내가 바람을 피우면 내 다리가 부러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진짜로 다리가 부러졌다. 존은 자신의 애인에게 발목이 부러진 걸 얘기했다가 매일같이 진짜 바람을 피운 게 아니냐고 추궁하는 통에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존은 그녀에게 바람은 절대 안 피웠다고 해명했지만(나는 존의 말을 믿는다. 물론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뜬금없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20,000달러를 주면 존의 말을 믿어주겠다고 했다. 사실 존의 애인은 존이 뭔가를 잘못할 때마다 돈을 요구해왔다고 했다. 그녀는 돈이 신뢰의 근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존은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20,000달러는 주기로 했단다. 한숨을 쉬는 존을 보며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존, 다음부터는 내가 바람을 피우면 돈벼락을 맞는다고 해보지 그래? 그럼 당신 애인은 당신이 바람을 피워도 당신을 아주 예뻐해 줄지도 몰라” 닥터 후가 말했다. 

  “그래요. 오히려 얼른 바람을 피우라고 매일 당신을 귀찮게 할지도 몰라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볼까?” 존은 우리의 아이디어가 만족스러웠는지 금세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풀며 대답했다. 게다가 웬일인지 이번에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분고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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