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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Mar 10. 2017

비다의 발자국

엘살바도르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바다거북 콧구멍에 박힌 빨대를 빼내는 동영상을 봤다. 영상 속 거북이는 콧구멍에 박힌 빨대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수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펜치를 이용해 콧구멍에 깊숙이 박힌(얼마나 깊숙이 박혔으면 손톱만큼 나온 빨대 끝을 펜치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빨대를 빼내려고 애를 쓴다. 그때마다 거북이는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린다. 거북이도 미간을 찡그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거북이에게 표정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실패를 거듭하며 차라리 빨대를 그대로 두는 것이 거북이를 덜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의사는 빨대의 나머지 부분을 끄집어냈다.

  처음 새끼 거북이를 방생하러 간다고 했을 때 그냥 놔두면 자연적으로 부화돼서 바다로 갈 것인데 왜 굳이 인공부화장을 설치해 인간의 손으로 방생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을 봉사활동이라고 명명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라파스 La Paz에 있는 이슬라 타자 헤라 Isla Tazajera, la Paz 섬에 도착할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거북이 알을 사고파는 행위가 금지됐다. 생각해보면 처음 엘살바도르에 왔던 2011년과 이듬해인 2012년까지 이곳에선 거북이 알이 별미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금지가 됐지만 어딘가에서 불법으로 매매가 이뤄지고 있던 것이다. 어떤 현지인 친구는 입맛을 다시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거북이 알이라며 거북이 알을 먹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 맛을 음미하는 듯한 시늉을 했었다. 그때만 해도 아니, 이번 거북이 방생 전까지만 해도 나도 언젠가는 거북이 알을 맛봐야지 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보통 바다거북이 한 마리당 약 90개의 알을 낳는다. 그 알들은 45일 정도 모래에 묻혀있다가 부화된다. 새끼 거북이들은 알을 깬 후 지체 없이 바다로 몸을 던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부화도 되기 전에 사람들이 찾아와 몰래 알을 채취하거나 야생동물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한다. 부화가 된다고 해도 바다까지 들어가는 길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다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가는 새끼 거북이들을 새들이 낚아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00마리의 거북이 새끼를 방생하면 겨우 한 마리 만이 생존해 바다거북이가 된다. 이건 갈라지는 알 껍질들 사이로 스미는 빛을 뚫고 세상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탄생일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온갖 풍파를 견디고 드넓은 바닷속에서 자신보다 먹이사슬 위에 있는 생물들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물렁한 등껍질이 돌보다 더 단단해졌을 때 비로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비로소 바다거북이가 됐지만 마지막 관문 하나를 넘지 못해 병들거나 죽는다. 어이없게도 그건 빨대나 플라스틱 포크 같은 것들이다. 해변에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모래 안에 박혀 있었다. 그것들은 곧 바다거북이 안에 박힐 것들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몇 번 와서 주워간다고 사라질 양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담기 위해 가져온 봉투는 가벼운 바람에도 날릴 정도로 가벼웠지만 이내 어떤 바람에도 꿈쩍도 안 할 만큼 무거워졌다. 

  쓰레기 봉투를 다 채우고 새끼 거북이를 방생하기 위해 해변에 섰다. 새벽 4시에 부화돼 빛을 본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이 작고 검은 것에 이름을 붙여주라고 했다. 나는 이 작은 것의 이름을 비다 Vida(생명)라고 지었다. 비다는 알에서 부화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자신이 써본 가장 큰 힘으로 저항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자유를 갈망하며. 

  등껍질은 단단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해 등껍질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 힘을 주면 그만 뭉개져버릴 것 같았다. 나의 두 손가락에서 해방된 비다는 처음 디뎌보는 땅이 낯선지 얼마간 그대로 멈춰있었다. 아직 걷는 법을 몰라서였을까. 모든 것이 처음이다. 잠시 후 세상에 첫 발을 내디고 포말을 맞으며 모래 위에 발자국을 하나씩 하나씩 늘려나갔다. 파도가 밀려왔다.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혹시라도 파도에 휩쓸리는 새끼 거북이를 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의 파도가 밀려오고 몇 번의 정지 동작을 한 후에야 해변에 남은 것은 우리뿐이었다.  

  비다는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시련을 극복할 때마다 등껍질은 점점 단단해질 것이다. 훗날 어떤 생물도 비다의 등껍질을 뚫지 못할 때 다시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그 발자국은 다시 수백 개의 발자국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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