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의 몸과 정신을 구성한다.
생존을 위해 음식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절대빈곤이 해소되면 식량의 양보다는 질적인 면에 눈을 돌리게 된다. 식자재와 음식들이 어디에서 어떠한 과정을 지나 우리에게 도착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착한 소비, 바른 소비를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 몸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구 생태계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많은 제도와 자격을 만들어냈다. 안전한 농산물을 관리하기 위하여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 원산지 표시제도, 농산물 우수관리(GAP) 제도, 위해요소 중점 관리제도(HACCP) 등 많은 제도가 운영 중이다. 재배와 수확의 단계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안전 관리가 목표이다. 농수산물 자체뿐 아니라 이들이 생산되는 주변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물복지 인증’은 동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사육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대하여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증하는 제도이다. ‘먹거리 안전관리사’는 올바른 농약사용을 안내해 농업인 스스로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전환토록 만든 제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먹거리와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났다.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의 질병 역시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대규모로 창궐한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산업환경은 지구온난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짐승들뿐 아니라 사람들도 피해를 함께 입게 된다는 교훈을 더욱 깊이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플라스틱의 소모를 줄이고, 친환경적인 상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듯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는 법을 함께 익혀야 한다.
아픈 젖소에게서 건강한 우유가 나올까?
우유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완전식품이라 불린다. 인류와는 8천 년을 함께 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실나무의 열매를 따는 것처럼 젖소에게서 우유를 얻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최근 몇십 년 동안 그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우유의 수요가 늘고, 다국적 기업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유제품을 생산하고 거래하면서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 되었다. <우유전쟁>(2018)은 현재 낙농업계 돌아가는 모습을 다룬다. 목장의 목부, 과학자, 낙농업체 직원을 다양하게 만나 유제품 생산 시스템 문제점 조명하고,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현재의 우유 생산 체제로 인해 많은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가에서 목장을 물려받아 가업으로 이어받아 운영했지만 가족 운영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목초지에 소를 풀어놓으면 되었지만, 이제는 축사 안에서만 기르고 있다. 젖 짜는 기계, 최첨단 로봇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높이라는 압박은 높아지는데, 대기업을 상대로는 제대로 된 가격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에는 서로 협동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러한 전통은 대부분 사라졌다.
또한 젖소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원유만을 생산하기 위해 최적화된 품종을 개발해냈다. 이 젖소들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늘 임신상태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젖소는 원치 않는 빈번한 인공수정, 임신, 출산 과정을 반복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깡마른 몸에 젖만 팅팅 부은 젖소들이 기계에 의해 젖을 짜낸다. 소의 평균수명은 20년이라는데, 젖소는 5년이라고 한다. 더러운 우리에서 사육당하며,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지금의 낙농업은 환경오염에도 일조하고 있다. 소들은 원유 생산을 위해 풀(1/3)과 농산물(2/3)을 함께 섭취한다. 대부분은 남아메리카산 콩이 차지하는데, 이를 위해 열대우림 숲이 불태워지고 있다. 가축사료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고, 굶주림과 식량난 발생하는 구조이다. 소의 되새김질이나 가스가 온실가스인 메탄 배출 비중의 상당량 차지하고 있다. 단백질(질소 함유량)이 높은 소 배설물은 땅속으로 들아가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을 일으킨다. 암 유발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장을 넓히기 위해 세계로 뻗어간 낙농산업은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유럽연합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오랫동안 낮은 관세로 유제품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분말 우유를 수입한 세네갈의 농가는 자연스레 덤핑의 영향을 받게 된다. 분말 우유로 인해 경쟁이 심해졌고, 영세한 젖소 사육자들이 망하여 농촌을 떠나게 되었다. 빈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빈곤지역에 음식과 함께 소규모 영농구조라는 생산수단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환경과 건강을 위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비용과 수익이 아닌 생태학과 철학적 관점이 더해진 농업이 필요하다. 생산량이 적어지더라도 건전한 가치관과 우수한 품질을 가진 유제품들의 등장을 요구한다. 현재의 우유 대량생산시스템을 벗어나 유기농 사육방식을 고집하는 농가들에게서 사람과 소들이 선하게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일도 많아진다고 하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우유의 세계화가 농가와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
<부패의 맛>(2019)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우리의 식탁까지 도달하는지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먹거리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지만 식품의 공급 사슬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적다. ‘시즌1’에서는 꿀, 견과류, 마늘, 양계산업, 우유, 대구(생선)를, ‘시즌2’는 아보카도, 포도, 물, 설탕, 초콜릿, 대마초를 다뤘다. 마트에 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식자재들이라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는 예상치 못한 부패와 비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시즌1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우유의 경제학’이다. 가족 낙농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전통적인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일을 도와주는 기계들이 등장했고, 생산성이 증가했다지만, 농장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우유 가격이 안정적이지 못 하기 때문이다. 과거 낙농업의 장점이 안정적이고 리스크가 적다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소규모 농장의 수입은 중산층의 절반에 불과하여, 겨우 먹고살만한 수준이라고. 이제 대부분의 소는 공장형 농장에서 키워진다. 규모의 경제 논리가 농가에도 도입된 것이다.
영화는 간단하게 낙농업계의 역사와 생태계를 훑어주기도 했다. 1996년에 미국은 유제품 시장을 개방했다. 농가들이 세계 시장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우유 가격의 변동성이 커졌고, 변화의 속도가 갑작스러웠다. 6개월의 예측조차 어려웠다. 2009년과 2012년에는 불황으로 많은 젖소 농장이 문을 닫았다. 반면 2014년에는 우유 가격이 기록적으로 높아졌다.
같은 시기 해외에서는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 불황을 맞이한 중국은 뉴질랜드에서 유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하면서, 우유업계도 영향을 받았다. 금수조치가 이뤄졌고, 이에 미국 유제품을 사지 않을 거라며 시장을 닫아버린다. 이런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과격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작은 농가들은 유기농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건강을 중시하는 풍조로 인해 유기농 농장이 높은 수익을 얻는 시대가 되었다. 유기농보다 더 높은 수익을 주는 우유도 등장했는데, 바로 생우유였다. 생우유는 천식, 습진, 알레르기 등의 질병을 완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또한 위험성도 높아 질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생우유를 먹고 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낫더라도 그 후유증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어려움을 처한 농가는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제품으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책임에 대하여도 늘 고려해야 한다.
소고기를 먹는 대가
<카우스피러시>(2014)’는 Cow(소)와 Conspiracy(음모)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제목이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공장식 축산 경영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환경 파괴와 오염을 말하는데, 축산업이라니? 다소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보통은 화석연료에 의한 대기오염, 오존층 파괴, 북극의 빙하 문제가 익숙하다. 낙농업은 환경이 깨끗한 청정국가의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영화는 공장식 축산 경영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그것이 지구의 천연자원을 어떻게 훼손시키고 있는지, 왜 이 위기들을 환경 단체들이 대체로 무시해 왔는지 살펴본다.
감독인 킵 안데르센은 엘 고어의 영화 <불편한 진실>(2006)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폭풍우, 산불, 극심한 가뭄, 녹아내리는 만년설, 산성화 되는 바다, 물에 잠기는 나라들을 보며 지구가 처한 위험을 알게 되었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재활용을 하고, 퇴비를 만들고, 물과 전기를 아끼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급속히 악화되는 생태계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미국의 주요 환경단체의 웹사이트에 가봤지만 축산업에 관한 문제에 대한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천연가스나 석유 생산에 쓰이는 수압파쇄법의 경우, 미국에서만 3800억 리터의 물의 소모된다. 가축을 기르는 데는 128조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 메탄 배출량은 두 산업이 비슷하다. 캘리포니아의 가뭄과 물 부족 사태로 고통을 겪는데, 캘리포니아의 물 사용의 절반이 육류와 유제품 소비로 사용된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수치들을 시각화하여 보여주었다. 114g의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물 2500리터가 필요하다. 햄버거 한 개와 두 달치 샤워가 동일한 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정용수로 전체의 5%에 해당하는 물을 사용하지만, 축산업에서는 55%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통계들은 육류 소비가 지구 온난화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설득한다. 이 말은 곧 육식을 덜 하는 것만으로도 환경보호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감독이 환경단체를 찾아 이메일로 축산업에 관한 질문을 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그들의 홈페이지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연락이 닿지 않자 단체들의 본사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직원을 만나도 원하는 답을 듣기 어려웠다. 그들은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원인을 다양하게 보고 있었고, 축산업, 기업식 농업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친환경 농법, 채식에 대한 소개로 할애되어 있다. 기후변화의 다른 해결책으로 동물을 그만 먹는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환경을 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동물 문제를 해결하면 온실가스 문제도, 식물 안전 문제도, 식량부족 문제도 해결된다고 본다. 지속 가능하며 도덕적으로 70억 인구가 살 방법은 식물 기반 채식임을 주장한다.
생명을 산업으로 여기는 시대
거대 글로벌 기업 미란도 그룹은 친환경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칠레의 한 농가에서 발견된 슈퍼돼지를 번식시켰고, 슈퍼 아기 돼지 26마리를 각국으로 보낸다. 회사는 우수 축산농가에 돼지를 분양하여 각국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기르도록 요구했다. 이렇게 10년을 키우고 자라난 돼지들로 콘테스트를 열고자 했다.
옥자는 한국으로 분양된 슈퍼돼지의 이름이다. 깊은 산골에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미자에게 옥자는 단순한 돼지가 아니다. 반려동물이자, 친구이자, 가족이다. 보통 돼지보다 몸집이 훨씬 크고, 지능도 뛰어난 옥자는 대자연을 만끽하며 우수한 품질의 돼지로 성장했다. 미란도 그룹은 옥자를 뉴욕으로 가져가기로 결정한다. 미자가 옥자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 알려진 것과 달리 옥자는 미란도 그룹의 비밀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했다. 유전자 변형 실험의 결과물이었던 것. 지구촌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이를 활용한 신제품 개발과 수익창출이 목적이다. 미자가 옥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 낸시는 옥자가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말한다. 그 가치는 오직 순금돼지 한 덩이로만 대체될 수 있다.
옥자를 탈출시키려는 동물해방전선(ALF)이 등장했다. 이들은 미란도 그룹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증거자료가 필요했다. 옥자의 몸에 블랙박스를 달아 실험실로 돌려보낸다. 옥자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강제 짝짓기와 도축장의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학대에 시달린 옥자는 난폭해져서 행사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미자는 옥자를 되찾기 위해 도축장에 잠입한다. 그곳에서 도축을 앞둔 수많은 슈퍼돼지들을 만나게 된다. 생산라인에 올라 도축되기 직전, 미자는 미란도 기업의 수장과 거래한다. 결국 옥자는 미란도 기업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슈퍼돼지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되돌아와야만 했다. 아기 돼지 한 마리를 겨우 숨긴 채.
<옥자>(2017)의 시나리오를 쓰던 2015년, 봉준호 감독은 2달간 비건(완전 채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거대한 도살장(비프 플랜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 5천 마리의 소를 도살하고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 도살장 장면이 등장하는데, 실제에 비하면 20배는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도살장에서 피, 배설물, 뼈 녹는 냄새가 뒤범벅된 악취를 맡고는 자연스레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옥자>는 육식을 반대하는 영화는 아니다. 인류는 수 천년 동안 육식을 해왔고, 이 역시 자연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 동물을 제품으로 여기고, 잔인한 환경에서 생산 라인의 일부분으로 만든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동물들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