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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Apr 27. 2017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시스템과 더불어 지속적인 개선과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 시도지사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이 몇 해마다 한 번씩 열린다. 후보자들이 많은 분야에 걸쳐 공약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기초연금 등이 연관되어 있는 복지 정책은 모두의 관심 분야이다. 후보자들은 움직이는 표심을 잡기 위해 사탕발림 같은 약속을 남발하기 쉽다. 공약들과 함께 언제나 등장하는 지적은 예산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마련이고, 이것은 곧 증세 논란으로 이어진다. 세금을 올리지 않는다면 국채를 발행하는 수밖에 없는데, 후보자들마다 경쟁적으로 선심성 공약을 내다보면 국가재정의 부담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정한 복지 제도 수립과 재원 마련은 꼭 필요한 논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외에도 필요한 것들은 얼마든지 많이 남아있다.


출처 :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제도의 맹점을 파고드는 사람들


<올리버 트위스트>는 고아 소년인 올리버가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다뤘다. 올리버는 어린 나이에 강제노역을 당하기도 하고, 장의사에게 팔려가기도 한다. 소매치기 일당에게 잡혀 수법을 전수받기도 하고,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고아인 줄 알았던 올리버가 사실은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였음이 밝혀지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소설이다. 어린 시절 빈민가에 살았던 찰스 디킨스는 영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소설 속에 구현해 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은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이룬 국가이다.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그 이면에서 부작용도 함께 커졌다.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런던과 같은 대도시로 몰려들어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이윤에 눈이 먼 고용주들은 이들을 고된 노동과 저임금으로 혹사시켰다. 집값은 치솟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주거 환경과 위생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일자리로 내몰린 여성과 어린이들도 저임금과 학대에 시달렸다. 대다수 사람들이 빈민층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시행한 신빈민구제법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이 법은 빈민을 구제하고, 아동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제정되었지만 실제로는 빈민을 특정 시설에 붙잡아두고 노동을 착취하는데 쓰였다. 주인공인 올리버도 보육원에서 기초적인 식사로 제공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과 학대를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출처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시스템에 덧붙이는 인간에 대한 예의


<나, 다니엘 브레이크>(2016)는 빈곤과 사회복지, 정책에 대하여 깊은 영감을 주는 영화이다. 주인공인 다니엘은 평생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심장병을 지병으로 앓고 있어서 부득이 일을 쉬고 있다. 일을 못 하는 동안 실업급여를 받고자 하나 그것이 녹록지 않다. 의사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진단을 내리지만, 노동청에서는 그가 일을 못 할 정도는 아니라며 급여를 주지 않으려 한다.


영화의 기본 골격은 실업급여를 얻기 위한 다니엘의 고군분투다. 이와 함께 다니엘과 그 주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 영국의 부조리한 복지제도에 대해 비판을 시도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도울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지만,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이들의 접근이 어렵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영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강한 나라지만 그 안에도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들이 존재한다.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싱글맘 케이티는 가장 현실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케이티는 다니엘의 소개로 식료품을 지원해주는 푸드뱅크를 찾아갔다가 통조림을 보고 허겁지겁 배를 채우다가 곧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비참한 마음에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일자리를 찾다가 나쁜 길로의 유혹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빈곤 문제와 복지제도를 소재로 극을 진행시켜나가지만 결국은 인간성과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니엘은 비록 가난하지만 비루하게 살지 않았다.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을 도우며 살아간다. 다니엘에게 도움을 받았던 케이티의 딸은 자신도 다니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등장인물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될수록 국가권력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대의 소중함을 깨우쳐준다.


출처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더 나은 제도를 향해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식코>(2007)는 ‘병자’라는 의미하는 속어로, 미국 민간 의료보험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폭로한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라 하지만, 의료보장체계에 있어서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쿠바 같은 나라들과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1971년 닉슨 대통령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의료보험제도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환자들의 혜택을 점차 줄었고, 시스템은 무너져 버렸다. 의료보험 업계는 로비를 통해 개혁을 가로막았고, 미국의 의료보장 수준은 슬로베니아 정도의 세계 37위에 머물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은 다소 충격적이다. 작업을 하다가 무릎에 상처가 난 사람은 직접 꿰매고, 손가락 끝이 잘린 사람은 스스로 접합을 시도한다. 의료보험이 있지만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파산한 부부가 등장하고, 병이 있어 아예 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가입을 받아 주었다 하더라도 보험회사는 온갖 이유를 들어 혜택을 주지 않으려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제도라는 사회보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보다는 좀 더 사정이 낫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얀 정글>(2011)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비정한 현실을 담았다. 몇 만 원 안 되는 금액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등장하고, 의사 간의 실적 경쟁으로 과잉진료가 벌어지고, 의료 민영화와 영리 병원을 향한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현직의사이기도 한 감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의료 시스템이 아니라 공공 의료의 제도적 보완과 세밀한 정책 수립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영화 <식코>


연대를 포기하지 않으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내일을 위한 시간>(2014)은 우울증으로 병가를 쓰다가 복직을 앞둔 산드라의 이야기다. 전화를 통해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 받기를 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불공정한 투표였다는 이유로 재투표가 결정되었다.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을 시작한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나 자신을 위해 투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동료들도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산드라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지만, 반대 입장에 선 동료들도 있었다. 동료들을 만나 사정을 하는 가운데 산드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결국 완주해낸다.


산드라의 절절한 요청을 모두가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들이 사악하거나 이기적이었다기보다는 그들에게도 가난은 버거운 짐이었기 때문이다. 빈곤은 누군가를 돌아보는 일조차 사치스럽게 여기도록 만든다. 어려울수록 어려운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야 하지만, 누군가를 밀쳐냄으로써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고자 한다.


산드라의 거절감은 깊어져 갔지만, 좌절 가운데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자리와 돈이 필요한 누군가의 사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폭을 얻었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선택을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자본이 중심이 된 사회는 가난한 자의 굴종을 강요한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연대를 포기하지 않으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삶을 선택한 이들을 응원한다.

 

출처 :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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