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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Jan 31. 2017

헌책방 골목을 찍어보자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

중고등학교 다닐 때 동네의 헌책방에서 한두해 지난 중고 참고서를 사곤 했다. 청계천에 가면 헌책방이 줄지어 있었다. 이제는 동네는 물론이고 청계천에도 헌책방이 많이 사라졌다. 대형 서점에서 헌책방도 체인점 형태로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헌책들이 온라인을 통해 거래된다.


책이 귀하여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역사도 그런 시절을 타고 생겨났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와 고물상이 수집한 헌책을 모아 파는 노점이 생겼고, 그러한 노점과 가건물들이 차츰차츰 모여 헌책방 골목을 형성했다.


온 김에 헌책을 한 권 구입했다.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이라는 책이다. 당시 3,600원이었으나 만원을 주고 샀다. 1978년에 초판이 나왔고, 1982년에 증보판이 나왔다. 마지막 장에 책 주인의 자필 사인이 있었는데, 구매한 날짜가 1984.3.17로 쓰여있었다. 3.21부터 읽기 시작했으나 다 읽은 날은 적혀있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던 윤성근 씨가 낸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헌책들 속에 쓰인 누군가의 메모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첫 주인이 책을 사고,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을 짧은 몇 줄로 남겨두었다. 헌책방에 모인 책들에는 거쳐간 사람들의 사연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헌책들에 낙서처럼 휘갈겨진 몇 줄의 짧은 글은 때로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수필이 되었다. 누군가의 글은 묵상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글은 연서였다. 한 시대의 낭만이, 또 다른 시절의 고뇌가 시간의 간극을 지나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책 주인들의 오래된 손글씨를 통해 때늦은 위안을 받았다. 책은 거쳐간 독자의 손길에 의해 그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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