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이었구나.

돌이켜보니, 그때 그 행동이 시그널이었구나.

by Eloquence

전에 살던 오피스텔 앞에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그 옆에는 복합쇼핑몰과 가구쇼핑몰이 있었다. 옷이나 신발을 살 때나, 가구 또는 생활용품 사기에도 좋고, 식당가와 카페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 동네가 아니라 집 바로 앞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가 최고 중에 최고였던 오피스텔이었다. 원룸이었지만, 일반 원룸에 비해 큰 평수였고 신축이라 깨끗했다. 구조도 좋았고, 1층에는 편의점, 카페, 무인세탁소, 빨래방, 식당, 미용실 등이 있었다.


하지만, 경보기 오작동이 잦았고 소음에 매우 취약했다. 특히 대형마트에 가는 차들의 클락션 소리가 매우,매우 심했다. 공휴일만 되면 정말 지옥이었다. 꼬리물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복으로 클락션을 울리는데 정도가 너무 심했다.


보복으로 그렇게까지 클락션을 울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도껏이어야지 마치 클락션에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빵을 여러번 울리기도 하고, 매우 길게 빠----------------앙 하고 울렸다. 매우 큰 소리, 길게 이어지거나 여러 번을 연달아 올리는 클락션을 여기저기서 울려댔다. 룰이라도 정해놓은 건가 싶을 정도로 모두가 단합이 되어 클락션을 울려댔다. 순간, 모 카페에서 새치기하면 클락션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글과 댓글에 동조하는 걸 봤던 게 떠올랐다.


앞에 오피스텔들이 있는 건 보이지도 않는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뉴스에서 보면, 작은 소음도 일상생활에 피해가 된다며 현수막을 거는 걸 봤던 게 떠올랐다. 더구나 n인 가구가 많은 주거단지의 동네에 위치한 지점은 통제하는데, 왜 여기는 몇 년동안 무방비상태로 놔두는 걸까. 1~2인 주거 또는 오피스텔 단지는 주거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갈수록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신고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대형마트 측에서는 깔대기만 세워놓을 뿐이었다. 교통통제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주, 매우 어쩌다가 한 번 또는 지역 내에 행사 있을 때만 교통경찰이 통제하고 있었다. 신고 당시에도 이미 이런 문제 때문에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왜 이렇게 무방비상태인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부동산에도 말했더니, 어떤 사람은 주말마다 어디 나가서 자고 온다는 말만 했다. 내 집 놔두고, 돈 주고 주말마다 자고 오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하는 태도에 더 화가 났다.


위험한 건, 통제가 전혀 안 되는 교통상황에 초록색 신호인데도 횡단보도까지 들이미는 차들 때문에 사고 날 뻔한 적도 있었다. 횡단보도까지 침범하는 차들을 보는 건 기본이었고, 신호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침범하는 차들도 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클락션 지옥은 변함이 없었고, 심지어 행사를 앞둔 주말이라 지옥은 더욱 심했다. 더구나 옆에 복합쇼핑몰에 가는 차들까지 겹치면서 집안이 울릴 정도였다.

별 소득은 없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일말의 믿음과 희망을 품고 신고해봤다. 그런데 출동해봤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 출동을 했다는 걸까. 바로 앞에 살고, 도로 상황이 잘 보이는데 출동한 적은 한 두 번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전화를 끊고, 참담함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와중에 클락션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끝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면서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틈으로 들려오는 소음에 몸부림을 쳤다.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서 시마즈가 귀를 막고 미쳐간 장면처럼.


감정과 생각은 무서운 속도로 끝까지 달렸다.


꼭 일이 터지고 나서야, 작은 일이 큰 일이 되어야 수습하니 클락션 소음 때문에 누구 하나 죽어야 이 지옥이 끝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구 하나가 나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그때 살던 그곳에 이사 오기 전부터 경보기 오작동으로 인한 불안이 조금씩 커지다가 그곳에 이사 온 뒤로 불안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든 상태였다. 변한 나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감당하는 것도 솔직히 힘들고, 뭐 하나 되는 게 하나 없는 삶인 사람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보란 듯이 창문에서 뛰어 내리면 될까.


그 순간, 남아 있을 내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사람들에게 상실의 아픔을 줄 순 없었다.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삶이었을지라도, 그래도 운이 좋았던 순간도, 감사한 순간도 꽤 있었다.

주저앉았을 때, 힘들 때, 모든 사람들이 싫어졌을 때,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변화하고 다가가보자고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그때 1%의 빛을 보고 일어나고 앞으로 걸어나간 거야.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클락션 소리는 울려 퍼졌다.

나는 도망치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날, 모 커뮤니티에 클락션 소음 관련 하소연 글을 올렸다.

자기 일이 아니니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심정에 공감하며 위로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에 나도 근처 산다면서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댓글에서 1%의 빛이 보였다. 덕분에 이사할 때까지 더는 충동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잘 참아낼 수 있었다.




사실 그 일이 있기 전, 엄마 앞에서 폭발한 적이 있었다.

엄마한테 기분 나쁜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엄마는 정말 영혼 없이, 대충 미안해했다.

그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에 나는 화가 더 났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따지고, 화난 감정에 대해 말을 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돌아오는 반응은 왜 따지냐, 왜 그렇게 생각하냐,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라는 말과 인상을 쓴 표정과 어휴, 예민해, 부정적이야 라는 뜻이 담긴 것 같은 눈빛이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남 보듯이 보지 말라며 울던 여배우가 떠올랐다. 그 심정이 내 심정이었다.


이해를 못해서 그런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화를 억눌러가며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보고,

예를 들어서 말해보고, 입장 바꿔서 빗대어서 말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비참했다. 내가 화난 거에 대해 이렇게까지 애한테 설명하듯 해야하다니.

동생이 나한테 연 끊자고 한 거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어도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이해해주더니

왜 내 마음은, 이렇게 설명을 해도 헤아려주지 못할까.


너무 답답했다. 사람이 너무 답답하면, 미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안 쉬어졌다. 이 모습을 엄마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서 화장실에 들어가 숨을 고르곤 했다. 한 참을 화장실에서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진정이 되어 나갔다.

(그 와중에 엄마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시 차근차근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침묵이었다.

또, 그 침묵.

온몸이 간지러웠다. 박박 긁고 싶은 걸 참고 있는데,

엄마는 “네가 사과를 안 받아주잖아! 어떻게 하면 되는데? 무릎 꿇을까?” 하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눈이 뒤집혀졌다. 부모 앞이니 애써 참던 것들이 폭발해버렸다.

나는 온 몸을 박박 긁고, 스스로를 때렸다. 소리를 질렀다.

내가 싫었다.

엄마 말대로 내가 사과를 안 받아줘서 엄마를 무릎까지 꿇게 한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그제야 엄마는 진심을 담은 말로 미안하다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의 온기에, 진심이 담긴 그 따뜻한 한 마디에 녹아내렸고, 겨우 진정이 됐다.


다음 날,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 어릴 때도 성질나면 머리 막 때리고 그러더니 지금도 그러네.”

가슴이 덜컹, 지하까지 내려 앉았다.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애들이 당연히 뭘 모를 때는 그러는 건데. 유아기때라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표현할 줄 모르니까 그런다는 걸 애도 안 낳아본 나도 아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심지어 훈육한 후에는 그러지 않고 말로 표현했는데. (예민하고 부정이라며 묵살당했지만)

훈육을 한 뒤에도 초등학생까지 본인 뜻대로 안 되면 집어 던지고 성질 부린 건,

내가 아니라 동생이었는데. 그래서 동생이랑 놀기 싫었던 건데.


오죽하면, 안에 한이 얼마나 많으면 저럴까.

그렇게 생각해주면 안 되는 걸까.


그리고 부모가 앞에서 무릎을 꿇는데, 제 정신일 사람이 누가 있겠나.

돌이켜보면, 엄마 앞에서 폭발한 것도 클락션 소음에 폭발한 것도

그만큼 반복되는 상황에 한계를 넘어선 이유도 있지만,

이미 많이 지치고, 무너지고, 심리상태가 위험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 신호를 나도, 엄마도 들어주지 않았다.


얼마 후, 이사를 했다.


클락션 소음 스트레스는 물론, 불안을 느끼던 것도 이사 가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극복해보자고 다짐했다. 장소가 바뀜과 동시에 새 출발한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굳게 결심을 했다.


어리석게도 그때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다가올 미래는 까맣게 모르는 채.



불안이 극도로 치닫기 시작한 그때,

무너지기 시작한 그때,

결국 위험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신호를 보냈던 그때,


모두 다 알아챘더라면 아니면 하나라도 알아챘더라면,

지금의 나는 좀 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