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한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by Eloquence

낯을 가려서 처음에는 매우 불편해하고 힘들어하지만, 종종 상대의 따스한 진심에 경계를 쉽게 허물곤 한다.

여럿이 있을 때보다 1:1에 강하지만, 여러 사람과의 시간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때면 재미를 느낀다.

사람을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알고보면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도 늘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기가 빨렸다. 1:1일 때도 그랬다.

분명히 재밌게 놀고 왔는데도 늘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상담하면서 내가 상대의 욕구에 맞춰주며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상담을 하는 중에도 상담사의 욕구에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도 기가 빨렸는지 알게 됐다.

동시에 연인과의 만남은 그렇지 않은 이유도 알았다.

단순히 사랑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인은 적당히, 맞춰가며 나 또한 챙길 수 있게 해줬다. 나의 기분과 감정, 속도를 생각하게 해줬다.

나를 챙기면서 상대를 챙기는 법을 알게 해줬다.

그래서인지 연인과 함께 있으면 과도하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과도하게 상대에게만 맞추지 않았으며, 상대의 욕구에 나를 잃어버린 채로 맞춰주지 않았다.

상담사가 파악한 부분을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챘나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가족도 알아챘을 수 있다.

나의 그런 점을 이용하느냐, 이용하지 않고 내가 편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느냐의 차이였겠지.


그리고 나는 인내심이 강하며 상대의 욕구에 맞춰주는 것 또한 인내심과 연결 된다는 점을 새롭게 알았다.

나의 장점이지만, 조절할 필요성이 있었다.




예민하다는 걸 인정했다.

예민한 건 섬세한 거고, 오히려 능력이 좋다는 상담사의 위로 덕이었던 건지

원래부터 알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도움을 받자마자 용기를 낸 덕이었던 건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로소 예민한 편이라는 걸 인정했다.


사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타인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의 예민한 부분을 안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섬세하고, 꼼꼼하며, 배려심 깊다고 칭찬했다.


그렇다면 왜 내가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 걸까.


상담사의 "비난으로만 들었으니까"라는 말을 듣고서 그 이유를 알았다.

나의 의견, 감정, 생각은 모두 '너가 예민해서 그래, 너만 그렇게 생각해, 너가 부정적이라서 그래,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라는 말로 수용받지 못하고 부정만 당해왔으니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인정하면, 가족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더욱 굳혀질 거고, 더 이해받지 못하고 평생 이상한 사람으로 남겨지는 게 싫고 억울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상담사 뿐만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인연에게서도, 한때 가까웠던 사람에게도, 연인에게도 들을 때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맞아, 맞아' 라고 동조하고 있었다.

그러니 인정해서 가족들이 이때다 싶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도 나도 할말은 있다.


엄마아빠도, 동생도 예민하고 부정적이야!

나더러 예민하다, 부정적이다, 유별나다 라면서 왜 나한테 별에 별 말과 온갖 감정들을 다 쏟아낸 이유가 뭐야? 그래서 나 배려해줬어? 맞춰줬어? 엄마아빠도, 동생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뭐라 할 자격도 없어!

자기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싫으니까 나한테 덮어 씌운 거잖아! 여기서 내가 제일 정상이고 건강하대!


두려워했던 그 마음들을 끌어올렸다.

두려워했던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고 나의 중심이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저 그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가시만 잔뜩 세우고 있다.

그 사람들은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진짜 관심이 뭔지도 모르고 우쭈쭈 해줘야만 좋아한다.

잘못을 인정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세다

나를 존중하거나 인정해주진 않으면서 그들은 존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인정에 목말라있는 것 같을 정도로 자랑이나 허세가 심하거나,

남에게 인정받는 거에 매달리고, 본인 중심으로만 대화가 되어야 한다.

자기할말만 하고, 정말 진심으로 상대의 말을 들을 줄 모른다.

본인이 준 상처는 잊어버리면서 본인이 받은 상처만 중요하다.

내가 뭘 하든 다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 사람들은 딱, 거기까지다.

미성숙하다.


그 사람들과 나의 차이다.

동시에,


가족들도 결핍이 있어서 그런거다.

가족 중에서는 내가 정상이고, 건강하다는 건

나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포용할 수 있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

해명을 하자면, 평생을 그래온 것처럼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자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해받고 싶고, 가족들이 나를 보듬어주길 바랐다.

나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외롭게 힘들었다.

이젠 가족들을 내 어깨에서 내려놓고 싶다.

버겁다.


나도, 상처가 많고 결핍이 있는데 또 내가 다 이해하면 그럼 나는? 가족들 중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건 누구란 말인가. 외롭고 쓸쓸하다.





나에게도 둔한 면이 있다는 걸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가족들이 내가 사는 집에 와서 내 침대에 눕고 (씻지도 않고), 내가 자는 침대에 자고 내가 바닥에서 자도, 여기저기 열어보고, 뒤져보고 그래도 괜찮았다. 익숙했다. 늘 내가 이사가는 곳마다 한 두군데 빼고 와서 그래왔기에 난 괜찮았다.


가족들의 꽁무니를 쫒아다니며 이것저것 챙겨줘도 괜찮았다.


물론, 깔끔한 걸로 유별나다는 식으로 놀리거나 물건위치를 바꿔놓고 소근소근대며 나를 시험해보는 건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이건 워낙 나를 편견으로 보는 거에 불만이 있다보니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나의 바운더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며, 가족에게 내어주고 살아왔다는 거였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거슬렸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애정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며 생각해왔더거였고

그게 습관이 되다보니 어느새 익숙해져버렸다.


나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건 커녕, 내 바운더리를 정하지도 못한 채로 살아왔다.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씁쓸했지만,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예민하진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람은 다양한 면이 있듯이 나도 다양한 면이 있구나.

나를 예민하다는 걸고 다 표현이 되는 사람이 아니구나.


다행이었다.


그건 그거고, 이제부터라도 내 바운더리를 과하지 않고 건강하게 형성하여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