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늙어간다.” — Jean-Paul Sartre, La Nausée
인간은 늘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세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며, 그 흔적이 쌓여 나이를 먹는다. 여기서 늙어간다는 것은 지키지 못한 약속의 무게가 영혼을 천천히 침식시키고, 작고 조용한 우울함이 삶 전체를 덮는 과정을 가리킨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이지만, 그 자유의 무게는 곧 책임의 무게이다. 책임은 약속을 통해 구체화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순간들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혹은 누군가에게 더 성실하겠다는 작은 결심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결심은 현실의 무게, 외부의 시선, 혹은 자신의 연약함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이런 미완의 다짐들은 마음의 어딘가에 남아 자책의 형태로 새겨진다. 그 자책은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쌓이면 삶의 방향을 흐리게 하고 자신감을 갉아먹는다.
또한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과거의 약속과 현실의 자신 사이에 점점 커지는 간극을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으로 미래를 선언하며,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다짐도 서슴없이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약속들이 현실의 제약들 앞에서 후퇴하거나, 아예 잊히기도 한다. 그때 인간은 자기에게 쌓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실패한 약속의 무게가 우리를 낡게 만들지라도, 새로운 약속을 향한 의지는 인간을 다시 일으키게 한다. 존재는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변화 가운데서 인간은 미래로 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