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2) - 사물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관찰하고 그것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이 모든 사물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했겠지. 하나의 돌을 나는 사랑할 수 있네, 고빈다. 또한 한 나무의 나무나 한 조각의 나무껍질을 사랑할 수 있네. 그것은 물건이지. 우리는 물건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네.
-싯다르타
싯다르타의 고백은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사물과 세계를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이 구절은 단순한 자연 예찬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헤세가 제시한 영적 여정의 핵심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싯다르타는 오랜 탐색 끝에 깨닫는다. 진리란 어떤 추상적 명제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사물들을 통해서도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그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들었고, 힌두 사상과 불교의 교의를 경험했으며, 금욕과 쾌락의 양극단을 모두 지나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참된 지혜는 언제나 그의 손바닥 밖에 있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그가 세계를 다시 “보는 법”을 배울 때, 다시 말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회복할 때 일어난다.
그가 고빈다에게 말하듯, 우리는 사물을 사랑할 수 있다. 싯다르타가 말하는 사랑은 존재론적인 사랑, 다시 말해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그러함(Sosein) 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하나의 돌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나무껍질은 그 나름의 질감과 나이테의 흐름을 지닌다. 인간의 해석이나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이 지닌 “지혜”를 그는 몸으로 배운다.
그동안 싯다르타는 세계를 초월하려 했다. 인간을 얽매는 모든 감각과 욕망을 떨치고자 했고, 사물의 배후에 숨겨진 궁극적 진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세계와 멀어졌다. 사물은 그에게 단지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강가에서 알게 된 지혜는 그 반대였다. 진리란 사물을 떠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함께 머무는 가운데 드러난다. 지혜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이 닿는 땅 위에서 피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찰하고, 그 속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물”이라는 표현이다. 사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이는 일이다. 돌은 그 단단함으로, 나무껍질은 그 오래된 주름으로, 강물은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생의 비유가 된다.
또한 이 인용문은 싯다르타의 비이원론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사물과 영적 진리는 분리되지 않는다. 돌도, 나무껍질도, 흙도 모두 존재의 거대한 순환 속에서 동등한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흔히 저 높은 곳에 있는 신비를 동경하지만,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그 신비가 이미 눈앞의 사물 속에 깃들어 있음을 말해준다.
요컨대, 싯다르타가 말하는 사물을 향한 사랑은 세계를 향한 경청이며, 존재를 이해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깊은 길이다. 우리는 돌을 사랑할 수 있고, 나무껍질을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우리는 세계와 연결되고, 자신과 화해하며, 존재 전체의 흐름 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