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기록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독서기록 #3

by 엘사


* 서술 시점은 2013.11.13 입니다.


미디어에 의해 생각이 지배된다, 는 학부생때부터 줄곧 들었던 말이다. 맥루한의 말이 매번 개론시간에 등장하고 그 전제 하에서 많은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최근 이 책을 읽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원저 이름은 The Shallows, 타이틀과 부제 모두 사실 파격적이다. 인터넷이 뇌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예전처럼 숙고하는 뇌가 아닌 빠르게 스캔하고 고르는 패스트푸드 식의 사고방식이 이미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대로 진행된다.


내용 자체는 단순명료하다. 문자시대의 도래로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고 말로 뱉어서 전했던 시대와는 다른 사고의 지평을 가져왔다. 책은 온전히 한권으로 컨텐츠의 의미를 지녔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그 흐름은 완전히 변화하게 된다. 검색기록에 걸리게 되는 조각조각된 글들, 작은 규모를 기준으로 재편된다. 누비이불로 치자면 디지털화된 컨텐츠들은 그걸 구성하는 천조각 단위로 바뀌어버렸다. 그렇다보니 컨텐츠를 보고 넘기는 멀티태스킹 속도는 엄청나게 향상되었고, 모든 기억은 우리가 아니라 구글이 해주는 게 되는데 그게 숙고하는 책의 시대에서 뇌의 구조가 '곡예한다'는 방식으로 바뀌어버린것을 뜻한다. 그리고 과연 그 변화가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에 대한 의구심은 니콜라스 카 한 명으로 결론 짓기에는 이르다.


집중력 자체가 옳기만한 능력은 아닐 수 있고 멀티태스킹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과 검색엔진, 그리고 미친 듯 빠르게 전환되는 멀티태스킹이라는 게 숙고, 집중이라는 가치를 완전히 삼킨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책 읽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 아이패드는 와이파이버전만 샀었다. 뭐라도 끊겨있어야 좀 읽지.) 읽는 디바이스는 오히려 뭐가 덜 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인상적인 구절들


이 연구가 발견한 또 다른 결과는 웹 페이지를 읽을 때와 책을 읽을 때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이너넷에서 검색할 때는 책과 같은 문서를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활동을 보여줌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이들은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과 관련한 전전두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반면 숙련된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는 웹 페이지를 보고 검색할 때 이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집중적인 활성화가 나타냈다. 여기서 희망적인 내용은 웹 서핑이 아주 다양한 뇌 활동을 수반하기 때문에 노인의 경우 사고의 예리함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이다. 정보를 검색하고 훑어보는 것은 십자말 풀이를 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뇌를 '훈련'시키는 듯 하다고 스몰은 말한다.

하지만 인터넷 사용자들의 집중적인 뇌 활동 양상은 깊은 독서 등,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행동들이 온라인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찰나의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며 링크들을 평가하고, 또 관련 내용을 검색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방해가 되는 문서나 다른 정보로부터 뇌를 분리시키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정신적 조정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독자소러 우리가 링크와 마주칠 때마다 적어도 몇 분의 몇 초라도 멈추고 우리의 전전두엽 피질이 그것을 클릭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판단토록 해야 한다. 글을 읽는 데서 판단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신적 자원의 방향이 전환되는 것을 감지조차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뇌는 활동이 빠르다) 이는 특히 자주 반복되었을 때 이해력과 기억력을 저해한다. (p.182-183)


인터넷 항해는 특히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형태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우리의 작업 기억을 정보로 넘쳐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이 곡예는 뇌과학자들이 우리의 인지력에 '전환비용switching costs' 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과한다. 우리가 관심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고, 우리의 정신세계에 더 많은 고통을 가한다. 매기 잭슨이 멀티태스킹에 관한 책 <집중력의 탁생>에서 설명했듯이 "뇌가 목표를 바꾸고 새로운 업무를 위해 필요한 규칙을 기억하고,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생생한 활동에서 오는 인지적인 훼방을 막아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p.198)



100개의 단어가 더 추가될 때마다 이용자가 이 페이지를 보는 데 투자한 시간은 평균적으로 겨우 4.4초에 불과했다. 읽기 능력이 가장 훌륭한 이들도 4.4초 동안 읽을 수 있는 단어 개수는 18개 정도에 불과해 닐슨은 “페이지를 장황하게 꾸밀 때 고객들은 그중 오직 18퍼센트만 읽을 것"이라고 고객들에게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과장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시간에 모두 글만 읽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글과 함께 그림이나 동영상 광고, 다른 종류의 콘텐츠 역시 보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 (중략) … 이 결과는 또한 닐슨이 온라인에서의 읽기에 대한 첫번째 연구 후 서술했던 결과를 더욱 확고히 한다. 그는 당시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라고 질문했었다. 답은 간결했다. "읽지 않는다"였다. (p.202)

웹페이지에서는 ‘읽기'라는 액션이 추상적으로 존재하거나 글자 역시 그림처럼 '보는 대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면적과 파급효과를 생각했을 때 뭐 그리 큰 영향력이 없을 수 있는데 그래서 '설명을 잘 쓰자'보다 한줄로 쓰고 끝내자가 중요한 거 아닐까. 웹을 많이 쓰다보면 외국어로 된 페이지에 큰 거부감이 없다. 그건 아마 '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앨런 튜링은 자신의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에서 '기계들이 사고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와 씨름했다. 그는 컴퓨터를 두고 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단순한 실험을 제안했다. 그는 이를 모방게임(imitation game)이라고 칭했으나 이내 '튜링테스트' 로 불려지게 되었다. --- (중략) --- 하지만 와이젠바움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엘리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성적이고 객과넞ㄱ인 판단을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엘리자가 사고하는 기계라고 믿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엘리자가 단순하고 심지어 명확한 지시에 따르는 컴퓨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때조차도 엘리자에게 인간의 특성들을 불어넣기 원했다. (p.296-297)


그(니체) 는 1916년 콘래드 에이킨(Conrad Aiken)에게 보낸 편지에서 타자기로 글을 쓰면서 나는 과거 그렇게 사랑했던 긴 문장을 쓰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현대 프랑스 산문과 같은 짧은 스타카토식으로 바뀌었다. 타자기는 명료함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미묘함 역시 권장하는 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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