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01 시험 잘 치는 아이

100일 글쓰기

by 엘사

주변에서 비춰질 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새삼 고민을 해보면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험 잘 치는 아이로 규정되곤 했다. 그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인데. 그저 밖에서 보기에는 독종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시험은 잘보지, 정도로 폄하되고는 했다. 그 사이에 내가 다른 것에 관심이 있거나 희망사항이 생기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험 잘 치르는 아이, 정도로 평가되곤 했다.


댄스동아리에 들고 싶었다. 그리고 종종 무대에 서서 춤추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그 타이틀 안에 갖혀지기 전, 딱 2년 전만 해도 그런 걸 자유롭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시험 잘 치는 아이'에 속하자마자 쟤가 뭐 그런 걸 할 수 있겠냐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유연하지도 않은데 춤은 무슨. 그 말을 들었을 때 균열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한 집단 안에서 사람의 캐릭터가 규정되는 것은 굉장히 편협하구나 싶었다. 공부를 잘한다면, 앞에 나서서 장기자랑을 한다거나 하는 일에 지극히 소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데 딱 그 한 단면만을 놓고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그 틀이 무서운 건 그거였다. 스스로도 그 이상의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로 만들어진 집단 안에서 딱 그정도의 위치로 만족하면서 있었다. 공부잘하는 모범생이 누릴 수 있는 안정감이 좋았던 것도 있다. 체육은 누가 잘하고 수학은 누가 잘하고 이렇게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것처럼 살았다.


정작 이런 집단 내 역할이 달라질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은 대학을 가고 나서이다. 모두다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아놓으니 더이상 '시험 잘 치는 아이'는 의미가 없었다. 술 잘 마시는 애, 춤 잘 추는 애, 운동 잘하는 애, 재밌는 애 등등 전혀 다른 색깔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경우는 이 중에서 춤 잘 추는 애와 일부 운동 잘하는 애의 캐릭터를 맡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속성인데 그걸 또 대학생때는 갖게 되었다. 짧은 경기라도 골을 넣는 에이스가 되고, 하나를 넣고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인 척도 해보았다. 그 때 느꼈던 이상한 해방감이 있었다. 우리 모두 여러가지 색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 전까지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딱 그거만 인정받았다면, 이제야 비로소 다른 면을 서로 봐주는 이들이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지금의 나는 무슨 특징이 있고 나의 개성을 어떻게 잘 돌봐주고 있을까.

그저 '일 잘하는 사람' 정도에 매몰된 채 즐겁지 않은 건 아닐까 새삼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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