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02 장례식

100일 글쓰기

by 엘사

관혼상제. 이 중에서 상(喪)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그 어색함이 가장 진하게 들어왔던 순간이 몇 번 있다.


첫 번은 대학 신입생때 동기의 부친상으로 인해 친구들끼리 함께 찾아간 적이 있다. 딱 스무살이던 그 해에, 우리는 모두 우왕좌왕했다. 장례식을 참석할 일도 여지껏 없었을 뿐더러,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위로할 수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 그 슬픔을 안고 살아야할 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조차 몰랐다. 대략 열명이서 화려하지 않은 검정옷을 최선을 다해 찾아서 입고, 웃음기 없이 들어가 앉아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마저도 자취생들은 목각처럼 굳어있고, 부모님의 튜토리얼을 들은 아이들만 말이라도 몇 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묵직한 자리에서 나서서 나오는 순간, 어깨를 누르던 공기가 스르륵 녹아 내렸다.


두 번째 어색한, 아니 형용할 수 없는 싫은 순간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뵈러가겠다며 버스를 탔다. 버스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갔지만. 병원에서 마주한 할아버지는 나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이게 정말 할아버지가 나를 기억하고 떠날 수나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그 옆에 덤덤하게 자리를 지키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면회시간이 끝나자 나를 데리고 나왔다.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부모님의 모습이 신기했다. 아직 누군가의 죽음이 와닿지 않는 나이여서인지, 극한 상황에도 초연한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 장례식은 이후에 다른 무엇보다도 큰 기억으로 와닿았다. 삼일장 내내 자리를 지켰던 것도 처음이었고, 수많은 조문객들을 안내하며 보내는 시간도 처음이었다. 아마 그 전에 내가 기억하던 장례식은 초등학교조차 들어가기 이전이니 사고 치지 않고 잘 앉아만 있어도 다행인 그런 시절이었을테니. 위아래 까만 한복을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주었다. 머리를 단정히 묶고 하얀 핀을 꽂는다. 장례식장의 직원들은 차분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에겐 평생에 몇번 없는 일이지만, 그들에겐 일상일 것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침통한 마음인데도 이모와 외삼촌들은 나를 반겼다.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던, 혹은 상상해왔던 장례식과 다른 점을 알 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사흘 내내 슬픔에 잠겨있을 수가 없다. 오히려 사방을 뛰어다니는 꼬마들을 잘 타일러서 차분히 앉게 정리한다든가, 지인이 워낙 많은 부모님의 손님들을 안내한다든가, 사람들이 떠난 자리의 테이블 정리는 물론, 이후 서빙까지 하다보면 시간은 금새 지나간다. 옷색깔과 장소만 빼놓고 보자면 그 자체는 결혼식에서 마주한 지인들간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일이라도 있어야 서로 얼굴을 본다, 같은 이야기들도 오간다. 특히 기쁜 일보다 슬픈 일에는 결코 빠져서는 안되는 예의가 있으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어떤 이는 유달리 목놓아 울고 슬퍼하는데, 살아계실 때 그닥 연락조차 하지않았던 사람이고. 오히려 살을 부대끼며 간병했던 이들은 그 순간에도 먹먹한채 그대로 서서 눈물만 흘리곤 한다. 선후관계가 다를 수 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서러움이 폭발한 것일 수 있고, 외부 사정으로 그렇게 모질게 살았던 이들의 후회일 수도 있다. 햇빛이 짱짱했던 그 해 여름, 외할아버지는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매주 주말 결혼식이 많은 시기가 다가온다. 처음 결혼식에 참석할 때의 이상한 기분이 이제 더 이상 들지 않을 만큼 결혼식에는 익숙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께 하면, 부모님들은 그만큼 장례식장에 간다고들 하셨다. 오묘한 감정이 드는 그 장소, 그 순간이 더이상 낯설지 않아질 때는 우린 또 어떤 다른 것에 생경함을 느끼게 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1 시험 잘 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