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03 내 첫 번째 혼밥

100일 글쓰기

by 엘사

혼밥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혼자 밥 먹을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한참 어렸던 중학생 때의 나는 혼자 어디 분식집에라도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편의점에서 대강 우유가 많이 든 커피음료나 요구르트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피치 못할 상황, 예를 들어 혼자 서울에 놀러 와 놀고 있다던가 도서관에 왔다가 급하게 점심을 먹어야 하는 경우에도 지극히 부끄러워했다. 마치 혼자 먹으면 외톨이 같고 괜히 쓸쓸하고 그랬다. 거의 제대로 먹지 못해서 비쩍 말라가던 때도 있었으니. 그때는 그렇다. 먹는 나 자신보다 그렇게 먹고 있는 나를 바라볼 누군가의 시선이 중요했다.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어린아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군가 단어를 만들어 그 행위를 '혼밥'이라고 명명해다. 그때부터 누군가는 혼밥족이 되고, 그런 행위를 하게 되면 '혼밥 한다'는 동사형의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시켜먹는 것은 어렵다. 괜스레 들어가서 "몇 분이세요?"라는 말에 "한 명이요."라는 답을 하기가 영 어색했다. 이런 상황이 처해지면 보통 혼자 있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카페에 찾아가거나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서 때웠다. 이상하게 집에서 직접 차려서 혼자 먹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데 ー 그마저도 자취 경력이 길어서 겨우 가능했다. 자취 처음 할 때는 혼자 먹기 싫어서 후배들을 불러서 먹기도 했다 ー 어쩐지 식당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해외여행을 가서 혼자 먹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의 눈에 비치더라도 나름의 사연이 있어 보여서. 자유롭게 떠나와 노는 와중에 그 나라의 문화를 온전히 즐기며 운치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 앉아 밥을 먹는다. 이 정도의 스토리가 부여된다면 혼밥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공간에서의 혼밥이 어렵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결혼식에 참여했는데 하필 내가 속한 인맥에서는 오롯이 나 혼자만 참석한 경우이다. 호텔식이라면 태연하게 앉아서 먹으면 되는데, 뷔페에는 그게 정말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다. 앞에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하필 바로 옆에 붙어있는 분들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이야기하는데 나만 덩그러니 먹고만 있는 게 영 어색하다. 그렇다고 해서 핵인싸처럼 그들의 대화에 끼기도 어렵다. 종종 그들이 아는 내 친구의 모습은 내가 한 번도 상상조차 못 했던 직장에서의 까탈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더 많은 경우의 수로 치자면 결혼식 주인공인 친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자기들의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럴 경우 더더욱이 끼어들 수도 없다. ー 더군다나 그걸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ー


이렇게 숫기 없는 내가 며칠 전 진정한 혼밥을 했다.


금요일 저녁 삼청동에서 레페토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대기 중인 시간인데, 이동시간을 고려했을 때 밥은 삼청동에서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점심마저 대충 먹었던 터라 아예 굶고 가는 것은 힘들었다. 가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삼청동은 많은 이들의 약속의 성지이고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렇게 또 카페에서 때우고 싶진 않았다. 커피에 케이크 말고 조금 더 밥이 되는 것을 먹고 싶었다.


식당 중에 그래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주 메뉴는 프렌치토스트이지만, 제대로 된 양식 레스토랑. 들어갈 때 직원은 몇 분이냐는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 보통 한 명만 도착해도 누군가 기다렸다 같이 먹을 것이라 하는 이야기다. 연습했던 말대로 '한 명이예요.'라고 말하며 숨을 골랐다.


태연하게.

원래 익숙하다는 듯.


다행히 비가 많이 온 날씨 탓인지 전체적으로 거리에 사람은 적었고 식당에서는 내가 식사를 마치기 전까지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일이 있어서 미팅 때문에 왔다가 쿨하게 혼밥 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주자, 라는 다짐을 하며 있었다. 이 모든 마음가짐이 들킨 것 같지만, 아무도 몰랐다고 믿고 지나치기로 하자.


경험은 나쁘지 않았다. 보다 천천히 먹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밥 먹다가 누군가와 말할 일이 없기 때문에, 한 숟가락 먹고 뉴스 기사를 봐도 좋으니 쉬어가야 체하지 않는다. 내 페이스에 맞추어 먹기 때문에 재촉하는 이도 없다. 느긋할수록 혼밥 할 이유가 생긴다. 여전히 처한 상황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만들어야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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