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04 학교 2002

100일 글쓰기

by 엘사

—만약에 응답하라 2002 시리즈가 제작된다면, 그리고 그 배경이 고등학교라면. —


01


여름 날, 2002 한일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때에 우리는 해본 적도 없는 축구를 해보겠다고 체육관에서 공을 빼왔다. 몸에 딱 맞는 교복블라우스에 헐렁한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교칙때문에 구두를 신을 수 밖에 없어서 축구하기 위해서 따로 운동화도 챙겨왔다. 규칙은 그저 중계자들이 해주는 말들로 배워서 오프사이드가 뭔지, 어떻게 공을 주고 받고 해야하는지, 골을 넣으면 득점한다는 정도의 아주 단순한 규칙만을 챙긴 채 나섰다. 저녁 먹고 난 후, 해가 어스륵하게 질 때쯤, 야간자율학습 직전에 짬을 내서 뛰쳐나왔다. 이 정도의 자유시간은 허용해주겠지. 짧은 자유시간 동안 만화책을 보든, 쪽잠을 청하든, 혹은 축구를 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종 치기 전에 자리에만 앉으면 되니까.


문제는 생각처럼 몸이 안 움직인다는 거다. 발로 공을 쳐서 저기 멀리 던져 놓고 싶은데 자꾸만 다른 쪽으로 간다. 생각과 실력의 괴리는 모두가 심각했고 정상적인 패스가 되지 않으니 뛰어다녀도 흐름이 툭툭 끊긴다.


“야, 이거 잘 안 돼.”

“좀 잘 해봐.”


그렇게 헤매던 여고생 셋에게 키가 허리까지 정도 되는 어린 남자애들이 왔다. 대충 봐도 초등학생이고, 근처 살아서 놀러온 모양이었다.


“이기면 아이스크림 내기로 하자.”


하필 그 중 제일 못하는 애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한다. 해맑은 애들은 먼저 치고 나갔다. 뭐 이렇게 운동바보누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뜯어내지 못해서 난리였을까. 그렇게 치열한 축구시간 이후에 엎드려 자기 일쑤였다.



02


남녀노소할 것 없이 축구에 빠져 있던 그 때에, 이천수선수가 좋다고 신문을 오리고 잘라붙여서 책상에 꽂아놓았던 아이가 있다. 결혼할거라고 신신당부하던 그 아이에게 선생님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해외리그 갈 때 취재차 따라가는 스포츠기자가 되서 접근해보라는 아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줬다. 아쉽게도 그 팬심이 몇 달만에 사그라들어서 비록 기자가 되진 못했다.



03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충장로 YMCA 앞에 섰다. 평상시보다도 유독 사람이 많았다. 모두 다 붉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쉽게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정작 경기는 집 근처인데도 티켓 한 장 없어서 스크린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사람의 땀이 튈 정도로 지척인 거리에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신나서 함께 뛰곤 했다. 더워서 노래진 하늘빛이 선명하다.


오히려 해가 진 이후로 축제가 계속 되었다. 사람도 많고 버스는 다니지 않아서, 열기도 식힐 겸 걸어갔다. 클락션소리로 응원소리를 냈고 함께 환호했다. 제법 어른처럼 보이는 고1이었어서 늦은 시간인데도 즐겁게 축제를 즐겼다. 여름 밤 시원한 그 때는 조금 늦어도 싫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다. 다같이 환호하며 웃었으니.



04


하루 온종일 함께 있다면, 서로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어진 자습시간에 꽤나 불편한 교복을 입고, 하루 두끼를 함께 먹는 사이에 오해가 발생한다면 겉잡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중학교때보다 더욱 친구관계가 중요했다. 분명 친했던 친구가 자연스럽게 살짝씩 멀어질때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습자지같은 소문 한 장에 어색함이 쌓이고 급식실을 함께 갈 사람이 바뀌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사귀고 헤어지는 연인 사이라면 오히려 더 깔끔할텐데, 그렇다고 절교도 아닌 애매한 관계의 변화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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