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앞으로 딱 21일 남았다. 심호흡을 하고, 공연을 해야 하는 순간을 위해 오늘도 복기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러 기회로 조명이 강한 무대에 서곤 했다. 진한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장식이 달린 한복을 입고 오른다. 어떨 때는 화관을, 또 어떨 때는 아얌을 머리에 얹고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란하기 짝이 없는 붉은 자주색 저고리에 연한 민트색 치마. 그때도 키는 컸기 때문에 가장 뒷줄에 섰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썼는데, 무대에 오를 때는 안경 없이 올라야만 했다. 어쩌면 그래서 겨우겨우 올랐는지도 모른다. 조명이 켜지면 객석은 그저 까맣게만 보이고, 나는 그 사이를 당당히 걸어 들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시작했다. 혼자 무대를 휘어잡을 능력도 되지 못했고, 옆과 앞을 보면서 하면 그래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니.
소심하기는 또 매우 소심해서, 한 번은 공연 다 끝나고 다음날부터 심장이 벌렁거렸던 적도 있다. 중학생 때는 아예 학교대항전으로 올리던 연극에 중간중간 춤을 추는 장면을 맡았다. 어렸을 때와 달리 키 때문에 앞쪽 중앙을 맡았다. 동작이 큰 편도 있고 다른 친구들이 나를 보고 하는 경우도 있어서였다. 생각보다 부담감이 컸다. 물을 마시면 체할 것 같고 대기시간도 길어졌다. 다들 모여서 출발하기 전에 맞춰봤는데도 자꾸 두려워졌다. 올라갈 때는 그저 안경을 벗었다. 징크스처럼, 이상하게 안경을 벗으면 용기가 생겼다.
안경을 벗으면 용감해지는 마법은, 렌즈를 끼기 시작할 때부터 사라졌다. 객석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명확하게 보일 때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다. 처음 발레 공연을 올렸던 날, 하필 매우 큰 공연장이었다. 첫 공연이고 하니 동생과 동생 친구를 초대했다. 다들 못하는 편이라 동선 이동도 지극히 적었고 나는 오른쪽 날개를 맡은 상황인데 동생 자리가 딱 그 앞이었다. 조명이 켜졌을 때, 예전처럼 까맣게 칠해져 잘 보이지 않을 객석을 바랐건만. 너무도 해사하게 웃고 있는 동생 얼굴을 본 순간, 잘하던 동작도 틀릴 뻔했다. 망치지는 않았다. 다만, 연습할 때보다 현저히 못했고 더 이상 마법 따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 의상,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이상하게 어깨 위에 묵직한 돌멩이가 얹어진다. 근육이 굳는 느낌에 휘청거리기도 한다. 무서워서, 결코 혼자 하는 것은 하지 못한다. 다 같이 올라가서 시선이 분산되어야 조금 버틸만하다. 두 번째 나갔던 콩쿠르는 무려 장염과 함께 했다. 몸에서 열이 올랐다 식었다를 반복하는데 하필 무대 위에 올라야 하는 타이밍은 대략 오후 10시 언저리였다. 나 혼자 하는 일이었다면 결코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빠른 귀가를 선택했지, 결코 그걸 하겠다고 버티지 않았을 것이다. 아픈 티는 나지 않게 하자. 심경은 그 정도였다. 지난번보다 잘하고 싶었는데 무대공포증이 역대급으로 발현된 날이었다.
야외에서 했던 공연은 조금 나았다. 조명이 아니라 자연광에서, 객석이 약간 거리감이 있어서 그저 신나게 한바탕 추고 오는 느낌. 그때 공포증을 조금은 극복했다. 정확히는 덜 못 했다. 거의 매일 연습했던 것도 있고 음악과 작품이 분위기를 휘어잡아주는 것도 있었다. 결국 그때 깨달은 건, 어쩌다 95%를 하는 게 아니라 보통 120% 이상을 해내야만 올라갔을 때 대략 80% 정도는 뽑아내는 것이란 사실. 이런 건 보통 남들이 그토록 많이 말을 하는데도, 직접 느껴야만 그 생각이 여실히 내 것이 된다.
이번에는 두 명이서만 꾸미는 부분의 역할을 맡았다. 작품 중 중요한 파트이기도 하고, 이목이 집중되는 역할이다 보니 부담감은 배가 된다. 겪어본 적이 있는 조명과 무대, 그때만큼 밝을 거이고 그때만큼 넓을 것이라. 두려울 테지만 잘하기 위해서 준비하자. 공포를 이기는 건 결국 사람의 힘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