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프로젝트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고 또 대부부의 영화와 스토리에는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라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직 없다. 모두가 별로라고 하는 이야기를 읽어도 그 중에서 누군가의 괜찮은 점을 잡아내고 만족하다보니. 최악이라고 꼽을만한 영화는 아직 없다. 그 중에서 굳이굳이 하나를 뽑았다.
<해어화>는 2016년에 상영된 영화로, 시대적배경은 20세기초 일제강점기이다. 주인공들은 권번에서 자란 두 사람을 하고 있기에 명확한 장점이 있다.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변화하는 지점의 한복양식과 기생 혹은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음악도 꽤나 좋은 편이다. 그 시대의 미쟝센도 훌륭한 편이다. 이때문에 더욱 스토리가 아쉽고, 등장인물들을 더 쫀쫀하게 잡아주는 이벤트들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은 정가를 부르는 소율이, 자신보다 먼저 가요 음반을 취입하게 된 연희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복수심이 주요 갈등의 골자이다. 이에 더해 윤우의 애정까지 연희에게 넘어가게 되면서 극의 갈등은 심화된다. 홧김에 경무국장에게 그의 여자가 되기로 하고 딜을 한다. 내 느낌에는 이 순간, 주인공인 소율이 이와같은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보는 이들이 따라가지 못했다. 대중적인 작품에서 일제강정기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 주인공이 일제와 타협하는 순간, 몰입은 깨진다. 우리는 그런 터부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고 걷어낼 수조차 없기 때문에 소율의 안타까운 마음보다 먼저 주인공과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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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썼다면
소율과 연희의 차이점은 사실 당대 유명 가수인 이난영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뚜렷하게 갈라지지 않았다. 그저 소율이 우등생이고 그보다 못하는 연희는 살짝 움츠려들어있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살뜰히 챙기는 것은 미묘한 감정의 잔상이 있다. 소율은 내심 연희에게 베푸는 마음이 자신이 가진 것이 더 많아서임을 은근히 인정한다. 노름빚을 갚지 못해 팔려온 연희보다야, 어머니의 대를 이어 권번을 책임지게 될 자신의 위치까지 생각해 볼 때, 연희는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을 작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권번에서 듣지 못할 가요를 듣게 해주는 것 역시 소율의 재량이었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고 연희가 눈을 반짝이면 그런 너그러움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자신이니 믿으라고 하며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윤우와 함께 세 사람이 만나게 된다. 처음만나던 순간부터 연희는 윤우의 눈을 쉽게 마주치지 못한다. 긴장하다 못해 굳은 채로 살짝씩 걸음을 피하는 것을 소율이 눈치챈다. 어색하지 않게 셋이 함께 가요를 들으러 가는 일들을 만든다. 소율 스스로는 그 미묘한 긴장감을 제어할 수 있는 마스터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래도 이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자신감이 불안감으로 바뀌어지는 순간은, 연희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이다. 정가를 워낙 자신이 잘 불렀기에 가요도 그럴 것이라 믿었던 소율은 연희의 입에서 가요가 시작되자 당황했다. 연희의 목소리를 칭찬하는 윤우와 작곡가들의 칭송에 심통이 나기 시작했다. 연습을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늦은 밤 노래를 부르다 권번의 주인인 소율의 어머니에게 두 사람 모두 불려가 크게 혼이 났다. 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은 가요를 부르겠다고 하는 연희는 그 날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말을 하는 연희가 소율은 내심 부러웠다. 연희가 자신보다 뛰어날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연습을 해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윤우가 만든 곡도 함께 불렀으나 스스로도 맛이 살지 않는다는 걸 알고 괴로워했다. 소율 스스로가 이어가야 할 것은 조선의 정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지내던 와중 경무국장이 주최한 연회에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갔다. 조선의 정가가 아닌 일본의 노래를 하라는 요청을 듣고, 부르고 난 후 돌아와 울었다. 자신의 것을 끊임없이 빼앗기는 것이 서러웠고, 하필 이번은 인정조차 할 수 없는 이유인 까닭에. 어머니 사후에 권번을 닫기로 결정하고 재산을 처분하여 낙향하여 정가의 후계자만을 찾기 위해 헤맨다. 가능한 한 숨을 수 있을데까지 숨는데, 들어가는 길에 연희의 음반을 사서 들어간다. 연희는 자신의 음반을 들고 소율에게 보여주고자 권번으로 오지만 더 이상 권번은 없고 황량한 건물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