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인적이 드문 시간이 있다. 그 때를 맞춰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로 향하면 대낮에 화려했던 많은 공간들이 모두다 거짓말처럼 닫혀있다. 타인이 남겨둔 수많은 잔상들을 흐트러놓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가본다. 남과 다른 남이 만든 시간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가만히 조용하게 앉아본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곳을 지나갔을 수도 있어, 그래서 여기에 낙서처럼 다른 무엇인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었을 수도 있어서. 눈을 감아서 기록을 찾는다. 읽히지 않을 기록이기 때문에 입꼬리 끝을 올려본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나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면, 당연히 내게 와서 말을 걸었을 것이다.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겨 익숙한 통로를 왔다갔다 한다. 건너편에 누군가 앉아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는 않는다. 거리때문인지 빛의 양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지금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얼굴을 완전히 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완전히 타인의 얼굴까지 파악해서 기억하기에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가방에 대롱대롱 달린 거북이가 자꾸 소리를 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뭐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투덜거리는 법이다. 목언저리를 긁어주니, 반짝이는 거북이가 기분좋다고 히죽거린다. 건너편에 보이는 실루엣에 자꾸 집중하게 된다. 기억이 거북이때문에 퇴색되었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 나에게 손짓을 한다. 물론 내가 아니라 내 가방에 매달린 거북이에게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뭐든 확실한 것은 없고 불확실한 말로 정의하면 더 구체화가 되지 않으니까.
늦은 시간이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어도 두렵고 자꾸 휴대폰만 확인하게 된다. 새까만 화면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만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보고 있다. 눈 앞의 누군가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가 남긴 기록인지 불분명하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지하철에서는 누구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앉아서 혼자 무엇을 하거나, 졸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