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영화 <장난스런 키스>
나의 소녀시대를 인상적으로 보았던 탓에, 영화관에 걸려있는 대문짝만한 왕대륙 출연의 포스터에 혹해서 예매했다. 발레 끝나고 꽤 늦은 시간이지만, <장난스런 키스>를 영화관에서 보기 위해 예매했다. 근래에 중국드라마를 본 탓에 크게 망설이지 않고 갔다. 비록 그 유명한 만화와, 드라마 시리즈는 본 적이 없지만 적당히 말랑한 청춘영화는 기분 전환에 좋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마나 영화를 정말 많이 보는 내가. 그것도 일본과 중화권의 영상물에 큰 거부감이 없던 내가 이 시리즈의 대략적인 스토리도 모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마 드라마로 보았다면 2회차 이전에 보기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은 장르이다. 로맨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주인공이 너무 과하게 무능하고 남주인공이 과하게 불친절한데 굳이 그 둘이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납득이 힘들다.
여주인공 샹친은 남자주인공 즈슈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다만 그 좋아하는 감정이 옆에서 지내면서 알게 되어 정든다거나 하는 그런 소꿉친구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처음 자신을 구해준 사람, 잘생기고 멋진 학교의 아이돌같은 존재인 즈슈를 좋다고 몇 년째 짝사랑을 이어간다. 브로마이드처럼 즈슈의 얼굴을 방 안 곳곳에 붙여두고 즈슈 얼굴이 박혀있는 베개에 이불까지 쓰는 것을 보면서 살짝 무섭단 생각도 했다. 그 정도는 같은 학교 친구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동경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을 수준이었다. 거기서부터 약간 이상하다 싶었다.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가 내어준 방에서 자기 얼굴이 박혀있는 이불을 덮고 이는 샹친을 과연 즈슈는 어떤 생각으로 봤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광경을 보기전에 어찌되었든 고백이라도 했던 거다. 비록 창피했겠지만 말이라도 한 이후에 그걸 들켰으니 좀 낫다.
고백하러 가는 길도 난해했다.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A반부터 F반으로 가르는 걸 잘 납득하는 극중 배경도 의아했는데, 무려 시설이 현저히 차이나는 것에서도 의아함이 쌓였다. 이건 거의 헝거게임에서 구역을 넘어가 판엠으로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려운 미션을 해야만, 겨우 시도할 수 있었다. 그 때 샹친이 하는 아주 솔직한 용기를 한 방에 깔아뭉개는 즈슈의 말이 싫었다. 좋은데 싫은 척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이 약간은 그 좋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여지는 있어야하는데 아니었다. 거의 뉘앙스만 따로 따자면 '너따위가 어떻게 나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의 뉘앙스였다. 아니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시작이고 샹친은 지치지도 않고 매번 좋아한다고 졸졸졸 쫓아다닌다.
한 번의 명확한 거절 이후에도,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샹친은 귀여웠다. 하필 집에서도 보이고 공부를 도와달라는 말을 해서 자꾸 붙어있다보면 정들 수 있다. 굳이 시험등수 확인을 해주러 올 때부터는 그래도 즈슈가 좋아하는 티를 내긴 하는구나, 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후에도 즈슈는 샹친의 감정과 용기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F반 아진이 분노해서 즈슈에게 싸움을 걸 때, 그걸 막아선 샹친을 조롱하는 영상이 나왔을 때, 표정이 과했다. 그 느낌도 있었다. 샹친이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마치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곤 해다. '네가 날 안 좋아할 수 있어?' 라는 말이 샹친에게는 설렜을 수 있지만 보는 내 입장에선 '저런 놈은 집착하지 마. 꼬맹아. 도망가 얼른. 이라고 외치게 되었다.
생각보다 어른이 될때까지의 여러 순간마다 샹친에게 말하지 않는 즈슈만의 일들이 있다. 당연히 그 모든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오해하기 쉬운 상황도 많았으니 순간순간 샹친이 상처받는 일이 한두개가 아닌 걸로 보였다. 사실 여기까지 왔을 때 이해못한 포인트는 오히려 샹친에 가까웠다. 그렇게 많이도 무시당했으면 상처받아서 보고싶지 않았을텐데 아가페적인 마음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말들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을 만한 단단한 자아가 있는 것인지 신기했다.
영화가 중후반부에 이르면 즈슈의 입장과 속내가 조금씩 보이긴 한다. 저 정도로 표현했으면 사실상 좋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까지 드러나게 된다. 그러다 또 병원로비에서 '널 좋아해'라고 외쳐서 돌아보게 해놓고 전혀 다른 맥락으로 말을 돌려서 샹친의 자존심을 뭉개버린 점에서 질렸다. 저정도면 완벽한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조건, 능력, 외모는 다 괜찮아서 성격파탄 수준이니까 이 이상 인생이 엮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내를 읽어낸 것처럼 샹친은 이사를 나가게 된다. 그것도 후반부에서 '사실은 즈슈도 괴로워했다'로 보여주지만, 그 정도도 표현 못할 사람은 용기도 말할 능력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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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애초에 츤데레 남주가 주인공인 장르와는 맞지 않는다. 틱틱 거리는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 여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내가 이 장르가 한창 유행할 때도 보지 않았던 취향의 탓이 크다. 그에 더해 이런 관계와 스토리진행이 꽤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약간 트렌드에는 뒤쳐진 느낌도 있어서 그렇다. 스마트폰을 들고 웨이보 모멘트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감성은 지극히 90년대 일본 감성이고 나는 그게 별로다. 츠카사도 별로 였고 정환이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시청자라 그럴 것이다.
만약에 이게 조금 더 내 취향에 맞으려면, 조금만 달라지면 된다. 그렇게 대차게 거절당할 때도 여주인공은 약간의 침울함과 망설임, 상처를 조금 더 깊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비록 받아주지는 않고 있더라도 여주인공의 미묘한 변화를 즈슈가 느끼고 걱정을 한다든지, 혹은 그렇게까지 까칠할 수 밖에 없던 즈슈 나름의 사연이 있던가. 최근에 본 청춘물들은 의외로 밝은 이면에 나름의 고충을 적당한 무게감으로 그려내는데, 이건 너무 단편적인 클리셰로만 고충을 표현한다. 물론 이게 고전으로 다른 작품에 차용되었을 수는 있다. 그저 2016년에 만들면서 이음새를 그전 것을 그대로 상속받았다는 게 별로다.
매우 심한 혹평을 했지만, 사실 영상미만큼은 좋았다. 특유의 밝은 느낌이 많았던 건 괜찮았다.싱그러룸이 느껴지는 것이라 괜찮았다. 언젠가는 내 취향에 맞는 청춘물을 써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물론 남들은 장난스런 키스를 더 좋아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