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 1일 1글쓰기에는 늦었으나 100개를 채우고 싶어서 늦게라도 쓰는 주제)
중학교 2학년 때, 서울행 버스를 타고 혼자 놀러왔던 적이 있다. 친척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어딘가에서 들어봤던 동네들을 찾아다니면서 지냈는데, 그 때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때는 압구정이 신기했고, 명동이 좋았다. 그 때의 명동은 지금과 달리 그저 번화가였고, 지방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규모여서 좋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는 내가 여기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달성하면 뿌듯해하는 그런 식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이 좋았다. 딱 그 강남에서 강북으로 올라가는 구간에서 바깥에 보이는 한강이 좋았던 것 같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보면 갓 대학생이 된 서연이 서울로 대학을 온 후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저 서울은 다 좋아, 라고 하며 뿌듯해하던 그 때의 모습처럼. 스무살의 나 역시도 서울이 좋아, 라는 마음으로 지냈다. 번잡하고 시끄러움 그 자체가 서울이었고 그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도시가 더 맞다고만 생각했다.
소음이 주는 안락함이 있다. 고즈넉한 공기에서 찾는 그 차분함 말고, 나말고도 다들 바쁘게 사는구나,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하는 그 특이한 감정이 있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안심이 되는 그런 안정감.
서울이 좋은 것은 맞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볼 수 있고, 유명한 가게는 서울에 많고, 직장도 모두 서울이다. 지방출신의 서울거주자들은 그렇게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기꺼이 헌납하면서 이 곳에 살고 있다. 그렇게 서울 생활이 10년이 되어갈 때 즈음, 아니 그보다 더 먼저 판교에 있는 직장을 갖게 되면서 탈서울하여 경기도권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 첫 경기도 생활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오히려 서울보다 더욱 고독했다. 나 빼고 모두 부모님이나 가족과 사는 동네에서, 외따로 홀로 떨어져있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거리가 큼직큼직 멀고, 그렇다고 교통이 매우 편리하지도 않은 애매한 동네. 촘촘하게 지하철이 늦은 시간까지 있는 그 전 동네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편의점 시설이 늦은 시간까지 하지도 않고, 자정이 지나면 고요하게 잠잠해졌다. 분명 사람은 많지만 모두들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전형적인 베드타운.
그 미묘한 불편함이 쌓일 때쯤, 내 성격도 변해서인지 이전에 살던 동네를 갔을 때 너무 낯설었다. 약간 정신없을 정도로 소음이 강하게 느껴지고 예민해졌다. 익숙함이란게 그렇다. 자정이 넘어 어둑해지면 작은 소리도 시끄럽게 느껴지는 시간인데, 그 전에 어떻게 그 소리에 무뎌져서 살았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요란스럽게 느껴졌다.
시끄러움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아침이면 적당히 사람 사는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에 더해 새소리가 나는 동네면 더욱 좋겠다. 고양이와 남편과 함께 사는 2인1묘 가정이다보니, 아침잠 없는 고양이가 꼭 그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보고 즐거웠으면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면 나도 많이 나이들었다. 인간이 만든 도시 속에 인위적인 조명이 익숙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오히려 산이 품은 환경을 더 그리워하게 된 것을 보면.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회사를 다니면서 새가 울고 자연이 보이는 집은 생각보다 꽤나 비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