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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사 Apr 14. 2019

26 발레공연 이야기

100일 글쓰기

2019 브라보 발레페스티벌, 공연 참여를 결정한 건 겨우 한 달 정도였다. 백조의 호수 파드 트루와를 재구성한 것이라 안무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준비기간이 매우 짧은 것이 마음에 걸리고, 그래도 나름 발레슈즈를 신고 할 것이라. 준비 기간과 실제 공연날에 대한 기록을 남겨둬야지. 

작품 순서상 나는 바리에이션을 둘이 함께하는 형태를 맡았다. 그리고 코다 부분에서 나타나서 점프와 피날레를 함께 하는 것. 바리에이션 팀인 두 사람은 워낙에 뛰는 건 부담이 없었어서 그랑아쌈블레를 남자분과 셋이 하는 걸 했고, 라스트 쥬떼앙뚜르낭과 아쌈블레-마지막 포즈가 주요 동작이다. 



컨디션 관리

발레공연을 위한 일반인의 컨디션관리라고 하면, 몇가지 사항을 스스로 정했다. 



음식


예전에 장염이랑 딱 맞았던 전적이 있어서 먹을 것을 극도로 조심했다. 한달이 남은 상태에서 굳이 살을 빼기 위해서 애쓸 필요는 없었는데, 그건 자칫 잘못 굶었다가 힘만 빠지면 동작을 할 때 형편없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사랑해마지 않은 빵을 줄이고 틈이 나면 고기를 먹는 편을 선택했다. 회식을 제외하고는 주로 집에서 먹었는데, 맵고 짠 걸 잘못 먹었다가 뒤틀리면 난리날 수 있다. 멘탈 자체는 강철멘탈이라 흔들리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에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 수능때도 그러했고 기타 다른 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발레클라스 후 바리에이션 연습


평상시보다 클라스 횟수를 1.5배는 늘렸다. 그것은 팀으로 나갈 경우 내가 못할 때 민폐가 커질까봐 두려워서였다. 하드캐리까지는 못하더라도 거대한 사람 하나가 틀려서 흐트러지는 것이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있던 모범생병의 일환이다. 평균보다 잘 하는 게 제일 좋고 못해도 평균은 가야하다. 누군가 못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내가 되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발레 클라스를 하나 듣고 나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데 그 때 되든 안되는 테크닉이 몰빵되어있는 바리에이션 1분 남짓한 걸 쭉 돌려본다. 튀어오르듯 서는 첫번째 구간과 예쁘게 쑤쑤로 서 있어야하는 두번째 구간이 지나고 나면 텅르베에서 데벨로페까지 이어지는 점프 구간이 나오는데 이 때 힘 딸리는 게 제일 걱정이 되었다. 에너지가 터져나와야하는데 그 때 기력이 딸리면 재미없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되든 안되든 끝까지 끌어갈 힘을 길렀다. 


코어운동


정말 하기 싫으니까 복근과 등근육 운동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해치우기로. 매일 4방향 50회씩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는다. 


일도 열심히


공연준비할 때는 자연스럽게 공연 쪽에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안하면 약간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취미생활에 몰두한다하여 본업에 충실하지 않으면 둘 다 대충하는 사람에 비해 더 원망을 많이 받으니 잘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공연 일주일 전. 다래끼가 났다. 월요일 아침 병원을 다녀온 후, 피로/과로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괜스레 슬퍼졌다. 예전보다 내 체력이 정말 많이 약해졌구나 싶었다. 꽤 먼 거리를 오가면서 연습하고, 거진 일주일에 6일 가량 발레하면서 보내고 회사는 일찍 가서 많이 하고. 신경쓸게 많다보니 어디든 고장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근육파열이 아니라 그나마 다래끼라는 것에 감사해야하나. 눈꺼풀 안쪽에 난 거라 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급격히 못생겨지는 안경을 쓰고 화요일부터 회사를 다녔다. 집중하면 눈을 깜빡이지 않는 못된 버릇을 고치려고 되도록 손으로 써서 입력했다. 발레할 때는 아예 안경을 벗고 스스로의 집중력만으로 몸을 잡아야만 했다. 안경이 살짝 얼굴의 가로폭보다 큰 편이라 피루엣 돌면 난리날 것이라 그냥 보지 않고 해보는 걸로 했다. 그저 매일매일 약 바르고, 항생게 먹고, 안약을 넣고. 착실하게 살다가 막 날인 금요일, 아예 회사일을 쉬고 하루 쉬겠다고 했다. 노트북/모니터를 보지 않는게 좋을 것이라 이너피이스를 갖고 한숨 자고 토요일에 못할 집안 일을 했다. 




짐싸기


커다란 가방 : 이걸 다 넣으려면 커야한다. 

후드티 : 두터운 후드로 예전에 첫공연때부터 안정적인 두께라 꼭 챙기는 후드, 아디디스 by 스텔라 맥카트니

단체티 : 참가기념으로 최효정발레스튜디오에서 맞춘 티셔츠, 스페이싱때나 클라스때 입으려고 챙겼다. 

반바지니트워머 : 다리워머랑 같이 입는 니트워머로 막 앉기 편하고 따뜻해서 바지 대용으로 쓰는 반바지, 레페토

다리워머 : 제법 긴 기장의 워머로, 나는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덮는 걸 선호해서 위쪽으로 당겨입는다, 마쥬에. 

레오타드 2개 : 스페이싱, 원데이클라스 를 고려하면 아마도 땀 뻘뻘 흘릴거라 두 개를 챙겼다, 유미코.

타이즈 3개 : 클라스용, 공연용, 그리고 스페어로 한 개. 더러워질 수 있으므로 여벌로 준비했다, 카페지오, 게이놀민든. 

발레슈즈 2개 : 클라스용과 공연용을 각각 가져갔다. 공연장과 대기실 바닥이 생각보다 더럽다. 소단사와 게이놀민든. 

테라밴드, 차코트 스트레치밴드 : 혼자 몸 풀 때 쓰는 용도. 보통 클라스때 하던 루틴대로 하면 되니까 틈날 때 하려고 챙겼다. 

양치셋트, 클렌징오일, 화장솜, 스킨, 크림 : 중간에 씻을 일이 은근 많다. 대기시간이 길어서 밥 먹고 오는 경우, 커피 마신 후 등등 쓸 일이 많고. 땀을 많이 흘려서 분장하기 전에 한판 다 씻으려면 필요하다. 

분장용 파우데이션, 프라이머, 섀도우, 쉐딩/하이라이터, 속눈썹 : 우리 스튜디오의 경우 별도의 분장사를 부르지 않고 가내수공업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기본 베이스는 알아서 할 수 있게 한다. 각자 피부톤에 맞는 자기의 파데와 쉐도우 등을 챙겨간다. 속눈썹은 시중에 파는 것 중 두 개를 사서 겹쳐서 쓰기로 했다. 

머리끈, 실망, 유핀, 실핀, 스프레이, 젤, 빗 : 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걸 다 챙겨야하는데, 내 경우는 잔머리가 엄청나서 젤과 스프레이를 열심히 동원해야 좀 낫다. 



그리고 피크닉 가듯 챙기는 과일들까지. 나는 청포도매니아라 청포도만 잔뜩 챙겼다. 

예전에는 여기에 요가매트까지 챙겨갔지만, 이번에는 그 방식으로 몸풀것같지 않아서 생략했다. 




분장과 의상 비포앤 애프터


분장사에게만 맡기지 않고 직접 자기 얼굴 특징을 파악해서 해보는 걸 도전(!) 했으나 내 경우는 워낙에 화장바보라 거진 선생님 손을 많이 탔다. 스스로 한거라곤 헤어라인 정리와 얼굴 윤곽쉐딩, 립스틱 정도. 속쌍커풀이라 아이라인을 위쪽으로 그리기 빡세고, 남들처럼 눈보다 많이 위쪽으로 라인을 가져갈 경우 눈썹과 사이 공간이 없어져서 별로다. 립은 원래 내가 쓰는 나스 댄스테리아, 평상시에는 살짝만 바르고 퍼뜨리는데 공연할 때는 그냥 발색 그대로 되게 진하게 발랐다. 



스페이싱


각 팀당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인데, 우리의 경우 워낙 참가자들 말이 많았다. 우리가 센터를 이렇게 나누는 게 좋네부터, 작품 진행 포인트 중 어디까지 와야하는지에 대한 맞춰보는 것도 그렇고. 알아서 파악하는 와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실제로 여기 오는 것은 좋으나 여기에서 다음 스팟까지 이동하기에 동작이 나오는 지도 파악하는 걸 하다보니. 풀파워로 춰보지 않으면 감이 오질 않아서 간단한 스트레칭 후에 지짜 공연하듯이 세 번 정도 뛰고나니 진이 빠졌다. 그렇게 나의 첫번째 레오타드는 땀에 쩔었다.  





원데이클라스


압축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바에 비해 사람이 매우 많아서 방향을 잘 잡고 서야했다. 바에서는 몸이 풀릴까 의심은 들었지만, 센터 동작을 할 때 확실히 잡는데는 도움이 되었다. 아다지오가 어렵지만 딱 공연을 하기 위한 바닥에서 균형을 잡아보는게 도움이 된다. 센터동작들 중에서 후반부로 갈 수록 그룹을 여러개로 쪼개는데, 어떤 일인지 세번째 그룹부터는 사람이 현저히 적어져서 두 번은 했던 것 같다. 공간 확보를 위해 부러 뒤로 빼지 않고 빠르게 자리잡고 했는데, 정말 정글이 따로 없었다. 



드레스 리허설


클라스 이후 2시간 경과하면 드레스 리허설을 진행한다. 실제 공연과 유사하게 이어지는 공연 순서. 다행히 남편이 찍어준 사진들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둔 것들이 많다. 스페이싱때 틀렸던 부분을 이 때는 다 고쳤는데, 바리에이션 마무리 때 흔들린다거나 다같이 코다 맞출 때 줄을 잘 못 맞춘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네 명이서 팔 동작을 맞추는 것도 신경이 쓰여서 내려와 몇 번을 반복했다. 



초반에 가장 어려워하던 파세로 길게 서 있기. 앞 뒤로 중심을 옮기며 하는 애티튜드는 나은데 위로 쭉 빼는게 은근 까다롭다. 



모든 게 다 끝난 마지막 타이밍. 혼자 커서 우뚝 서 있는 느낌이지만, 안보여서 그렇지 애티튜드 했...다. 를르베도 했고. 






본 공연


본 공연 전까지는 사진을 찍을 여유따위 없어서 그저 불안한 지 근력만 계속 유지중이었다 .아침에 했던 루틴을 다시 하고 중심잡기 연습만 해보고.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옆팀들이 예쁘게 포즈잡고 사진 찍는 게 내심 신기했다. 이 지랄맞은 성격 탓이다. 거의 물도 먹지 못한다. 딱 5시반 정도에 저녁을 간단히 먹고 양치한 이후에 먹는 건 살짝 포기했다. 실제 공연에 올라간 것은 7시 20분경이고 내려와서 대기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7시 30분 정도. 그 때 뭘 먹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 그냥 버티기로 했다. 앞 팀 공연이 끝나고 우리가 들어갈 순서에서 긴장은 했다. 바리에이션 순서 이후에 무대 뒤쪽으로 이동해야하는데 이게 어렵다. 밝은 조명 밑에 있다가 뒤로 돌아오는 게. 다리에 힘도 풀리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어디 전까지는 와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이 것도 리허설 때 파악해두어야 하는 사항이다. 무대에 재 등장했을 때는 이미 노래 템포가 빨라진 시점이라 격정적으로 올라가는 긴장감을 맞춰가야한다. 파이-아쌈블레가 그래도 다행히 클라스때 했어서 조금 안심되었고, 5인대형 맞추는 것도 성공적이었다. 매번 내가 미처 못와서 틀어졌던 것인데, 종종걸음 포기하고 휘적휘적 와서 맞췄다. 쥬떼 앙뚜르낭을 할 때 방향을 자꾸 잘 못 잡았는데 본 공연 때 이게 맞아떨어져서 '된다!' 라고 속으로 외치며 이어갔다. 스스로 어디가 불안한 지 아니까 그 부분에서 셀프 다그침으로 버텼다. 







휴식, 마무리


공연을 할 때는 그렇다. 리허설보다 못하면 아쉽고 더 잘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남는다. 다행히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어서 조금 더 나아졌다. 끝나고 대기실까지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리허설때는 이렇게 쏟아내지 않았는데 이번에 한 건 진짜였구나 싶었다. 이제 우리는 간단하게 인증사진도 찍고 예쁜 척도 할 수 있다. 다른 팀 공연할 때 마지막 마무리를 위한 인사를 맞춰보았다. 이 마무리가 멋지게 되어야만 좋다. 리허설 때도 관계자분들이 '더 자신감있게 들어오라'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아주 상쾌하게 공연을 마친 느낌으로 등장하는게 멋있으니까. 




그렇게 끝난 오늘은, 


그저 쉬고 먹고 자고 꽃을 보고 놀았다. 뿌듯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편안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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