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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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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그를 좋아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 붙일 곳 없는 새로운 학교에서 뭐라도 정 붙일 곳이 생긴 것이 좋았다. 물론 우리 둘 다 그 사람에게 마음을 허락한 것도 사실이다.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동경할 수 밖에 없고, 미세하게 떨리는 마음이 좋았다.
-잠깐만, 아빠한테 전화.
전화벨이 울렸을 때, 정은에게 양해를 구했다. 살짝 고개를 틀어서 조용한 목소리로 받았는데, 놓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지금 혼자 적당한 고시원에서 쪽잠을 청하는 딸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통화음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 한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응? 아, 주소 불러줄테니 찾아가라고? 하숙? 아. 아냐. 아빠 친구집이면, 뭐 괜찮겠지. 난 괜찮을 것 같은데. 왜? 아냐아냐. 불편해하지 않을게. 아빠가 친하다며.
전화를 끊자 정은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커다란
전화를 황급히 끊자 정은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뭐래뭐래. 어디로 가는 건데? 너 지금 있는 방에서 더 있으면 안 돼? 나도 놀러가고 좋잖아.
-아. 아버지 친구분한테 미리 말을 해놨대.
-응? 그래도. 아 그럼 멀어지겠다.
-하긴 지금은 바로 너네 집 앞이니까.
살고 있는 고시원은 딱 정은네 집 30미터 반경에 있다. 골목만 꺾어서 들어가면 정은이 사는 아파트가 나오고 그 앞에 자리한 허름한 고시원에서 겨우 열일곱 먹은 여자아이 혼자 살고 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부모님과 동생이 출국한지 일주일 가량이 지났나. 입학식은 보지 못하고 떠나는 걸 아쉬워했다. 난 괜찮다고 해도 공항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던 엄마 생각하면, 괜히 남는다고 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 후회가 길어지지 않게 잔소리처럼 통화가 매일 끊이지 않았다. 우리 딸 밥은 먹었니, 학교는 잘 갔니, 오늘은 가는 날 아니구나 미안.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통에 차라리 그저 같이 살 때가 간섭이 없었던 거 아닌가 싶었다.
-남구 신문동 39-42 번지. 주택인가봐.
-여기면 좀 먼 쪽 아니야? 우리 집이랑 완전 반대 방향인데?
학교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과는 정 반대쪽. 정확하게 반대쪽이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학교 생활이 시작한 지 겨우 사흘이 지났는데, 이 동네의 전반적인 구조를 알 턱이 없다. 정은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지금 이쪽으로 오는 방향은 대체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로 오래된 아파트가 많고, 반대쪽은 갓 지어진 주택가들이 꽤나 그럴듯하게 있다고 했다. 대체로 으리번쩍하게 지어둔 예쁜 집들이 많아서, 산책삼아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단점을 꼽자면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서 현저히 불편하고 부모님들이 태워주는 차를 타야지만 편하게 나올 수 있다고. 다시 말하면, 집-학교-학원 말고는 자유롭게 놀러 다니기도 힘든 곳.
-선유, 거기 아저씨 아줌마가 태워다 줄 것도 아닌데 혼자 다닐 수 있겠어?
-안되면 싸게 자전거라도 사야지 뭐.
소란스럽게 정은의 잔소리가 이어지고, 그게 다시 잦아들 때는 해는 뉘엿뉘엿 사라졌다. 정은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방향을 틀었다. 어느 정도인지 파악은 해야했다. 버스 정류장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면, 현실적으로 이동이 쉽지 않을테니 미리 파악은 해야했다. 주소를 지도앱에 넣고 도보 옵션을 찍었더니, 도보 한시간 20분. 멀다. 이어폰을 꽂고 천천히 걸어갔다. 걷다보면 언젠가 나와있겠지. 학교 앞을 지나 꽤나 어두워질때쯤, 주소에 나온 집이 눈 앞에 나타났다.
학교에서는 버스타고 30분, 다만 대기시간이 20분. 이걸 포기하고 걸을 경우 대략 40분이면 나오는 위치이다. 골목길에서 세 번은 꺾어야 나오는 위치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거창하다. 진한 회색 벽돌로 쌓아올린 집은 근처 다른 집보다 더 커다랗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인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