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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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그저 흔한 슬픈 짝사랑에 대한 투정이다. 그날 그 순간으로 다시 돌린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모든 것이 새롭고 아직 채 봄이 가시기 전, 빳빳하게 장만한 교복을 챙겨입고 교정에 들어서던 첫 날이었다. 그 때의 우리는 한창 꿈 많고 설레는 일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들어섰다. 어설프기만한 걸음걸이탓인지, 단상에서 신입생을 위한 환영사를 읊었던 사람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학생회장, 김준영. 그 때의 김준영에게 열광했던 건 비단 나 하나뿐이 아니었다. 빙긋 웃어주는 표정에 모든 아이들이 꺄악꺄악 거리며 좋아했다. 그 때의 김준영은 모든 이들의 스타였다. 반득하고 또렷하게 단정한 모습, 누구든지 똑똑한 그 오빠와 이야기하고 싶다며 속삭였다.
단상이라는 위치가 참 신비롭다. 지면에서 고작 몇십센치 높을 뿐인데, 그 위에 올라서 있는 이를 우러러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모두 다 그렇게 보아야한다면, 그렇게 보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뻔히 지루하기만 할 학교생활에서 어디 하나 정 붙일 곳이 있다면 나쁘지 않다. 가족들과 떨어져 이 곳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도, 후회할 여지가 없었다.
-같은 반이지, 우리?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양정은 때문이기도 했다. 학원에서만 보던 친구지만, 여기에서 만난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워낙 성적이 좋으니 이 아이만 믿고 한국에 남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이 처음에는 내심 불안한 기색을 비췄지만, 양정은과 함께 갔을 때 괜찮다고 해주었다. 굳이 다른 나라에 가서 생소한 것을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앞으로 몇 년간은 나의 인생이 걸린 시간이 될것이라, 익숙한 것이 좋았다.
-응. 확인해봐봐.
-1학년 A반. 좋은데?
정은은 한시라도 내게 떨어지면 안 되는 것처럼 나에게 친절했다. 꼭 옆에 앉고 싶어했고, 밥도 따로 먹는 것을 싫어했다. 아마 조금 더 나이가 어렸으면 화장실도 같이 가자고 했을 수준이다. 정은은 바짝 붙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회장 오빠, 멋있지?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말이 나와서 새삼 놀랐다. 짐작은 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을 사도 꼭 포토카드는 같은 걸 바라곤 했다. 얼굴 선이 얇은 사람이 좋고, 차분한 사람이 좋고,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멋진 사람이 좋았다. 과묵하면서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 조금 차가워도 그게 또 멋있어보였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그 첫날, 우리는 각자 첫사랑에 빠졌다.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피어오른 애정을 여과없이 이야기했다. 공원의자에 앉아서 우리의 팬심을 뿜어내다보면, 노을이 깊어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