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프로젝트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질문에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다른 나라로 옮겨가 살고 있는 친구라든가, 어린 시절 함께 보냈지만 그간 연락이 끊긴 친구, 혹은 세상에 이제는 없는 이들까지. 이 중에서 기적이 일어났으면, 꼭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게으른 일상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다시 만날 수 있는 일은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수 밖에 없으니.
내가 아직 미성숙하던 시절에, 그러니까 별 생각없이 뱉은 말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기 이전의 일이다. 한글을 쓰더라도 표현을 빚어내는 방법이 어리석어서 떠나간 친구가 있었다. 열네살의 나는 입에 가시가 돋혀있었다. 그 가시가 얼마나 날카로운지도 모르고, 어디에 박히는 지도 모르고 말을 했다. 매일같이 단짝처럼 붙어있던 친구에게 무심결에 한 이야기가 둘 사이의 거리를 그토록 멀게 만들 줄 몰랐다.
"서울 가서 언제오는 거에요?"
"글쎄. 아마 콘서트 끝나고 며칠 있다 올거야."
"곧 개학인데 왜 얘는 대책없이."
십몇년이 지났는데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이 순간으로 되돌려서 어렸던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어쩌면 같이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시샘이었을 수도 있다. 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었기때문에 그 당시 친구의 부재가 못내 아쉬워서일 수도 있다. 핑계가 무엇이든, 나는 분명 큰 잘못을 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면 나는 아주 진득하고 깊이있게, 길게도 사과할 수 있을텐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무슨 일을 하고 있니, 결혼은 했니, 하는 등의 시시콜콜한 질문까지 수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을텐데.
그간 유행하는 SNS가 생기면 그때마다 이름을 검색해보곤 했다. 중학교 떄 이미 다른 지역으로 전학가버린 것만 알고 있어서, 또 어떤 아이디를 쓰고 살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이름과 생년으로만 검색해보곤 했다. 그래도 너무나 평범한 이름은 아니니까 찾다보면 나오겠지 했지만. 여러번을 찾아보고 또 다시 깨달았다. 이런 걸 안 하는 아이였지. 같은 이름을 가진 백 명의 사람들 사이를 뒤져도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혹시 몰라서 구글링도 해보았다. 물론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