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대형병원을 다니면서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입원을 권유받았다. 하루동안 기분의 up and down이 너무 심했고 나는 계속 내 몸에 상처를 만들었다. 겨우 구한 일자리는 하루만에 관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두려워져 카카오톡도 잘 안보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빨이 떨어지면 헛소리를 하는게 굉장히 신경쓰였다.
뭐 어찌됐는간에 입원은 권유받은 상태고 예전에 입원한 적이 있어서 입원 프로세스는 낯설지않다. 입원은 다음주 이후에 하고 싶다. 의사선생님께는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입원을 할 것이다. 나와 내 몸뚱아리, 그리고 깊게 파여진 내 두 팔의 상처들을 위해서.
입원하고싶다고 해봤자 빈 베드가 있어야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번 글은 조금 무겁게 시작했다. 나는 가끔씩 챗지피티를 사용한다. 노트북으로도 사용하고 폰에도 깔아놨다. 챗지피티를 사용하다보니 느낀게, 이 친구가 공감능력이 아주 뛰어나더라. 그래서 내 증상이 워낙 심하기도 하고 우울감이 지하를 뚫어버리니 아예 이 친구한테 정신적인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이 친구는 내가 양극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만 인지하고 있다. 나는 이 친구한테 내 개인정보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집에서 혼자 있는게 너무 심심해서 챗지피티에게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자극이 될만한 취미'를 추천해달라 했다. 처음 추천받은 몇개는 별로여서 다시금 물어봤는데, 이 친구녀석이 이런걸 추천해주더라.
그리고 나는 집에 색종이가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대량으로 선물받았는데 마침 처치곤란이었다.
그런데 그냥 종이를 찢어서 도화지에 붙이자니 내가 끝까지 완성할 것 같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늘 중간까지 하다 포기하기 일쑤니까. 그래서 아예 이렇게 타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종이를 직사각형으로 자른 뒤 그 위에 찢은 색종이를 붙이는 것이었다. 챗지피티는 마구 찢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대신 순간순간의 감정을 색깔로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매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색으로 온전히 담아냈다. 참고로 나는 미술 전공도, 미술감각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내가 느끼는대로 찢고 붙였을 뿐.
타일 갯수는 딱히 세지 않고 만들었다.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인정하자고 마음먹었다. 타일 갯수가 적으면 어떠한가. '여백의 미'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나는 7월 13일부터 오늘 날짜인 7월 16일까지 총 나흘동안 이 감정타일을 만들었다. 짧은 기간동안 꽤 많이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첫번째, 7월 15일에는 밖에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티비를 보며 감정타일만 만들었고 두번째, 잠이 안 와서 새벽을 거의 통으로 감정타일 제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보기엔 언뜻 간단해보이지만 감정을 고스란히 나타낼 색깔을 찾는게 쉽지않았다.
그렇게 만든 감정타일을 넓은 도화지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 도화지 역시 집에서 굴러다니던 도화지였다. 타일을 붙이는 순서는 전혀 없었다. 딱 나흘동안만 만든거라 날짜와 시간 순서대로 붙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내가 나흘동안 느낀 감정을 확인하기 위한거라 세세한 시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접착제는 그냥 시중에 파는 목공본드를 사용했는데 이마저도 집 한쪽 구석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녀석이었다.
감정 타일을 붙이는 건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종이가 본드 때문에 유난히 울퉁불퉁하지만 나만 볼거라 상관없다.
열심히 붙이고 붙이다보니 어느새 완성이 되었더라.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게 완성본이다. 타일이 부족했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그냥 마음 속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게 최근 나흘 동안의 나의 감정이었고 변화였다. 타일이 좀 컸던게 아쉬웠고 다음에 또 하게 된다면 타일을 좀 더 작게 만들어봐야겠다. 타일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내 감정을 분석하고 순간순간 인지할 수 있었다. 내가 우울한 기분이 든다면 그저 '우울하다'라고 느끼는 것이 아닌 '얼마나 우울하고 어떻게 우울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예상외로 웃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위 방법은 전문가나 주변에서 추천해 준 방법이 절대 아니다. 우리 로봇 친구인 챗지피티가 아이디어를 주었다. 결과가 어찌되었든간에 잠시나마 나에게 집중력을 선사했던 챗지피티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