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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언어

예쁜 아이

by 김태호


초등학교 5학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함께 살던 사촌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윗 동네로 이사를 갔어요.

저는 사촌 동생이 보고 싶어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동생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낯선 마을, 낯선 집에서

삼촌과 숙모는 소와 돼지를 길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동생과

딱지를 치거나 구슬을 굴리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요?

동생이 조금 붉어진 볼빛으로

제게 은밀한 비밀을 들려주었습니다.


"행님아~ 우리 앞집에 새로 이사 왔는데

딸이 셋이더라.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이 제일 예쁜데

그 예쁜 애는 밖에 잘 안 나온다.

계속 방에서 피아노만 친다."

"어! 그래? 그라믄 한 번 보러 가보자!"


쭈뼛거리는 동생의 등을 떠밀며

앞집으로 향한 우리는

담벼락에 몸을 기댔습니다.


담벼락 위로 눈만 내민 채로

가슴 콩닥이며 마당을 보니

두 여자아이가 검은 고무줄을 나무에 묶어

뛰놀고 있었습니다.

"저 둘 중에 있나?"

"아니 쟤들 아니고 더 예쁜 애가 한 명 더 있다."


우리는 그 예쁜 애를 보기 위해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렸지만

결국 그 아이는 볼 수 없었고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예쁘다는 아이는

시골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

전학을 왔고 저는 그 아이를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볼 수 있었기에

그날을 아쉬움은 두고두고 보상받은 셈이지요.


20년 후 그 예쁜 아이는 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때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며

계속 예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까이서 보니 그렇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그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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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믿음이 생긴다. 안다는 건 그만큼 노력했다는 의미다. 노력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불이 타오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바람을 넣어야 하듯 사랑도 노력 없이는 금세 시들기에 잠시도 방심하거나 안심할 수 없다. 사랑이 식었다는 건 노력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다. 노력이 사라지면 서로에 대한 관심은 물론 소망조차 사라진다.

사람 사용 설명서는 관심과 이해와 인내와 희생과 애씀 끝에 발견되고 끝없이 수정되어 간다. 그 사람만의 가치를 담은 보물 지도다. 살고 살아가기에 쉼 없는 노력으로 다듬어져 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기록이다. 문득 아내의 남편 사용 설명서가 궁금해진다.

-새피엔딩(사람 사용 설명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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