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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언어

by 김태호


처가에서는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가진 건 빚밖에 없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당연한 처분이었다고 여깁니다.

장인 장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 섭섭함이

아주 없었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겠지요.

우리 아버지가 못났다고 나까지 못나지 않았다는

오기도 들었고 지금 집안이 어렵다고 평생

어렵겠냐라는 오만도 품었습니다.


결혼 후 장모님과 저는

결혼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단 한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처가에서 식 때마다

제가 밥 한 그릇 비우면 꼭 그만큼

다시 담아 주십니다.

제가 좋아한다고 한 두부 부침은

언제나 한가득 쌓아 놓으시고요.


장모님 손맛은 다 좋지만 특기는 손칼국수입니다.

곱고 빵빵한 밀가루 반죽을 굵은 방망이로 넓게 피고

숭덩숭덩 썬 후, 멸치 다신 물에

채 썬 애호박과 함께 푹 끓이면 세상 하나뿐인

장모님 표 손칼국수가 완성입니다.


커다란 우동 그릇에 잔뜩 담아

쏭쏭 쓸린 잔 파, 양파,

봄날에는 쫑쫑 쓸린 냉이가 뻑뻑하게 들어간

간장 양념 한 스푼을 넣어 저은 후

후후 불어 입에 밀어 넣습니다.


그 맛이 과연 일품이라

한 그릇 순식간에 비워냅니다.

그럼 장모님은 묻지도 않으시고

또 그만큼을 퍼서 제 그릇에 담아 주십니다.


눌러 담은 그 밥이 장모님의 화해 방법이자

사랑임을 깨닫게 된 어느 날,

뜨거운 국수를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서는

두 번째 부어진 허언 칼국수를

다 밀어 넣기까지 그릇에 코를 박고 있어야 했지요.


미련한 사위는 장모님이 어깨 팔 아프도록 반죽 밀고

아파트 청소하며 받은 돈으로 담은

김장 김치 해마다 받아먹으면서도

그것이 자식 사랑인 줄도 모르고 그 자식에

자신이 포함된 줄은 더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리도 들 수 없는 제게

장모님께서 또 한 번

"여 좀 남은 거 마저 먹지?" 하십니다.

긴 대답을 할 수 없어 세 번째 그릇을

그저 공손히 맞이하였습니다.


아직 그 감정이 남은 며칠 후 장모님 생신 때

난생처음 사랑한다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예쁜 딸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요.

장모님께서는

'그래 고맙다.' 하셨고요.


그래서 저는 그만 칼국수 먹은 날보다

더 많이 울어버렸습니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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