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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Nov 08. 2021

당신은 지금 안전지대에 있나요?


10년 전 지하 1층 현금 인출기 앞

그날은 월급날이었다. 그때 현금 인출기 앞에 있었던 이유는 월급 통장에서 대출금 이자 통장으로 이체를 하기 위해서였다. 신혼 때 대출을 많이 끼고 산 아파트 대출금과 생활비 통장으로 이체를 하고 나니 월급 통장에는 잔액이 거의 남지 않았다.


당시 우리 부부는 경기도 거주하며 둘 다 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이 자력으로 시작한, 특별할 것 없는 30대 맞벌이 부부였다.


월급날. 허탈감이 종종 느껴졌지만 그날 유독 더 허탈했던 이유는 전날 개인 면담이 떠올라서였다.


면담의 요지는 앞으로 출근 시간을 30분 더 앞당기라는 것이었다. 마케팅과 홍보 일을 겸하고 있었던 우리 부서는 이미 타 부서 대비 30분 일찍 출근하고 있었다. 여기서 30분을 더 앞당기려면 7시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어린이집 문 여는 시간 8시. 한 시간 동안 아이는 어디에서 누구와 있어야 하나? 베이비시터 이모님도 1시간을 따로 근무하기 위해 출근하지 않는다. 출퇴근 3시간 소요, 잦은 야근과 출장, 그 사이에서 방치되고 있던 우리 집 일상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당시 회사는 인원 감축 중이었다. 급속도로 성장 중인 기업에서 응당 겪는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부서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인사 고과도 좋았던 내가 감축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이가 어린 워킹맘에게 아침 출근을 1시간 당기는 것이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 참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때 내가 확실히 느낀 점이 있었다.


회사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회사라는 곳이 마냥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곳도, 헌신한다고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주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남아서 지금처럼 통장이 텅장이 되는 생활을 이어갈지, 회사 밖에서 더 벌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떠날지 그때 나는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또 있었다. 능력 있는 마케터라는 말에 취해 회사에서 필요한 일들을 해내느라 나와 우리 가족에게 정작 중요한 일들이 방치된 지 오래였다. 쫑긋쫑긋한 입술로 조잘대는 아이의 하루 일과 들어주기부터 어린이집 설명회, 운동회, 재롱 잔치 등 학부모 중요 행사에 제때 참여하지 못했다.


 부동산, 주식, 투자 등 자산을 불리는데 정말 중요한, 놓쳐서는 안 될, 재테크 투자 공부도 늘 뒷전이었다. 좋은 기회라는 직감이 들었어도 놓친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야근 후 돌아와 모니터를 켜야지 하면서도 아이를 씻긴 후 잠들기 바빴다. 자기 계발도 늘 뒷전이었다. 사두고 읽지 못한 신간들이 쌓여갔다.


주변에서 서울에 집을 샀네, 큰 평수로 옮겼네, 투자한 게 대박이 났네라는 말이 들려올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회사를 우선순위로 열심히 다녔는데 어째 내 인생만 제 자리인가 싶었다. 아니, 제 자리가 아니라 퇴보한 느낌마저 들었다.


회사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지금 결정 내리지 못하면 영영 주도권 없는 상태로 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쳐질 것만 같았다. 몇 년을 더 다닌다고 해도 내 삶에 변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일, 마케팅 일을 오래 해왔으니 무엇이라도 팔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직장인에서 1인 기업가로

퇴사 직후 서점으로 찾아가 시중에 나온 자기 계발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기 시작했다. 몇십 권의 책을 탐독 끝에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온라인 상 콘텐츠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N잡러로 다양한 일=달걀을 다양한 바구니에 나눠 담은 뒤 그중 잘 되는 분야에 집중하는 피보팅(pivoting) 전략을 택하기로 했다.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다른 한 명은 회사 밖 딴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회사 밖에서 내 일을 해보고 안 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경우의 수도 열어두었다. 늘 집 안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내 인생도 한 번쯤 못 먹어도 고를 외치고 싶었다. 누가 뭐라든 내 인생이었다.


직장인에서 1인 기업가로. 어떠한 완충 장치 없이 0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콘생(콘텐츠 생산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성 콘텐츠로 무한한 기회와 만나길 바랍니다. 걱정은 내려놓고 나다움, 감성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앞에 수많은 변수와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나와 내 가족을 지키면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분야에서 롱런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실질적인 도움과 응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성 콘텐츠' 에필로그 중,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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