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미친 사람이 된다는 걸 들켜버렸다

내 발목을 잡힌 운명의 문장들

by 엘슈가

누군가는 건드려 주길 바랐다.

빨리빨리 촌음을 다투는 세상에

나만의 월든을 만들고 그 속으로 들어가

오직 활자로 승부하는 긴 호흡의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하곤 하는(Do) 사람들이 있다.

해야만 사는(Live)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그 일을 사랑하는(Love) 사람들이.


이 복잡 다단한 모순을 정리해 줄 글이 있었으면 했다. 순도 높게 내 마음을 두드려대는 글을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나탈리 골드버그의《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보석 같은 글이지만, 번역서 특유의 거리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러다 이번에 발견했다. 임경선 작가의 신간에서.


정신이 사소한 것에 열을 내거나 쓸데없는 일에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타인의 소셜미디어도 거의 보지 않으며 자극적인 뉴스도 모두 피한다.

사실상 자기만의 외딴섬에 가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못 도 닦는 사람의 일상인데, 집필-운동-휴식-독서의 정해진 루틴을 꽤 긴 시간 동안 지켜내지 못하면 작업이 이어지기 어렵고, 작업이 이어지지 못하면 책을 계속해서 내거나 저술업을 이어나갈 수 없다. - 임경선,《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사실 나는 이 책을 이 시기에 읽지 않으려 했다. 1년여 전 출간 계약한 초고를 매만지고 매만져서 출판사에 송부할 날이 딱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굳이 필요한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펼친 건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아서였다. 이 책을 본 순간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목차나 살펴볼까 하던 나는, 한 챕터에서 복장이 와르르 열리고 말았다.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공개하기까지 그 과정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며, 과정 자체도 결코 쉽지 않은 '글쓰기'라는 작업. 그 안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묘사한 문장을 본 적이 있던가. 글을 쓰면서 가끔, 아니 종종 내가 너무나 특이하고 모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집필에 몰입해야 하는 시기에는 아무나 만날 수 없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작업물들이 젠가 조각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걸 다시 추슬러서 진도를 나가기까지는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실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강의와 코칭, 커뮤니티 운영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주 2~3회 사무실에 나가 상담을 하기도 한다. 일종의 중개업 일을. 그런데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밀도 높은 글쓰기를 이 일들과 병행한다는 건 전제부터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마흔 이후의 삶은 더더욱 하고 싶은 일만 선택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것도 저것도 기꺼이 끌어안아야 할 내 삶이기에.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 가끔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런 글쓰기의 고단함을, 작가라는 직업의 외로움을 보듬어준 문장을 이 책에서 만났다. 챕터의 제목은 이것이다. '글을 위해 자신을 좋은 상태에 두기'. 이것을 위해 나는 종종 마음을 내려놓곤 한다. 나를 안 좋은 상태로 방치해 그것이 내가 쓰는 글을 흐리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챕터를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가장 피치를 올려야 할 시기에 이 챕터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글쓰기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이토록 세밀하게 전해준 이 챕터를 머금고서 남은 기간 기꺼이 피치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독’이라는 외딴섬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은 타인을 향한 ‘거절’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문장을 빚기 위한 다정한 ‘침묵’임을 깨달았기에.


그렇다. 나는 이 문장에 발목을 잡혔다. 이런 발목이라면 기꺼이 잡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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