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뜨리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돌부리>

내 발목을 잡힌 운명의 문장들

by 엘슈가
지나가는 사람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는 게 아니라
더욱 조심해서 가라고
잘 가라고
살짝살짝 발바닥을
채어주는 돌부리
오솔길 숲속 길에 오늘은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네.
<돌부리, 나태주>

유난히 마음이 뾰족뾰족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타인의 말투나 행동도 유독 뾰족뾰족하게 느껴진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말과 행동에도 '왜 저러지?' 생각하고 한 템포 참았어야 할 말을 툭 내뱉은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다 나만의 충전 공간으로 돌아와 따듯한 레몬 꿀차 한 잔 마시고 나면 비로소 안다.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편치 않았음을.


풀꽃시인 나태주 님의 '돌부리'는 짧은 시다. 짧은데 이토록 여운이 오래 남는 글이라니. 여러번 읽었다. 시구가 눈에 들어와 머리속을 거쳐 심장으로 들어가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돌부리'에서 내가 멈칫한 부분은 바로 돌부리에 대한 해석, 이 구절이다.


"돌부리는 지나가는 사람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는 게 아니라,

더욱 조심해서 가라고, 잘 가라고 살짝살짝 발바닥을 채어주는 존재다."


평소 돌부리에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선입견이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길을 다닐때도 무엇인가에 골몰하는 편이라 잘 넘어지곤 하는 나에게 돌부리는 오래전부터 나를 넘어뜨리는 성가신 존재였다. 그런데, 돌부리의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니, 되레 크게 넘어지지 말라고, 지금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니냐고 살짝 살짝 발바닥을 건드리며 말을 거는 존재라니.


평소에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 큰 병이 오는 경우를 본다. 건강을 믿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여긴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반면 잔병치레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무병하는 경우가 많더라. 돌부리는 그런 게 아닐까? 큰 사고를 막아주는 작은 경고등 같은 것. 시인이란 이토록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만들어 건네주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깨달았다. 살면서 마주치는 돌부리가 성가시다고 미워할 일 아니라고. 돌부리라는 존재가 있기에 스스로를 돌보며 큰 고난을 대비할 수 있는 거라고. 어쩌면 삶이 보내는 수많은 걸림돌은, 나를 넘어뜨리려는 음모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더 근사한 문장을 완성하라는 친절한 교정 부호인지 모른다고. 이 문장을 읽고난 나에게 이제 돌부리는 삶의 적정 속도를 찾아주는 새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그렇다. 나는 이 문장에 발목을 잡혔다. 이런 발목이라면 기꺼이 잡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