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얽히고설킨채 살아간다 <모순>

내 발목을 잡힌 운명의 문장들

by 엘슈가
"진진아, 미안해. 너보다 우리 자식들을 더 사랑해서... 너한테 정말 미안해......."

참말이지,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모는 전화선 저쪽에서 몰랐을 것이다. 이모의 마지막 말 때문에 내가 그 순간 왈칵 울어버렸다는 것을. 나는 울음을 감추기 위해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벌써 가득 고여 흐르고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나는 창밖을 보았다. 거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 문장은 이모와 주인공이자 화자인 진진이 통화하는 대목이다. 통화 내용을 생생히 살린 대화체와 묘사체의 문장으로 챕터 8. 착한 주리를 마무리했다.


이모의 딸인 주리가 주인공 진진에게 무언가 심한 말을 한 낌새를 차린 이모가 뱉은 말은


"네가 이해해라"가 아니었다.


"너보다 우리 자식들을 더 사랑해서 정말 미안하다"였다.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다. 정이라는 정서는 늘 우리의 곁에 머물러왔다. 인지상정은 정 중에서도 '사람이라면 보통 가질 법한 인정'을 말한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조카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소설 <모순> 속의 이모는 그 사실이 미안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대목을 왜 대화체와 묘사를 살려 자세히 표현했을까. 바로 이 문장으로 이모의 캐릭터를 설명하고자 함일 것이다. 결말 부분 작가가 준비해놓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위한 빌드업 중의 하나 아닐까. 소설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독자적인 세계를 이토록 촘촘히 구축하는 일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 문장에서 유독 시선과 마음이 머물렀던 이유는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이모, 그런 이모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카인 나. 그 감정선이 팽팽함과 동시에 읽는 사람을 설득시킨다. 무장해제 시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그렇지만, 억지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화 후에 따라오는 문장은 '장면', 그중에서도 계절의 묘사다. 울면서 쳐다본 바깥의 풍경이 하필 무심하게 세상을 굽어보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라니.


그렇다. 나는 이 문장에 발목을 잡혔다. 이런 발목이라면 기꺼이 잡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