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살아가다'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나에게는 이 부분이 어떤 문장보다 팔딱팔딱 살아있게 다가왔다. 마치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 올릴 때 파닥임처럼, 손님 많은 재래시장의 채소 가게 피크타임 모습처럼. 나에겐 어떤 문장보다 이 문장이 그랬다. 살아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 이 문장은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건 바로 양귀자의 소설 《모순》 속 주인공 진진에게 이모가 남긴 편지글의 일부분이다.
(아래 인용 문장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읽기 전인 독자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 하고, 말 안 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친 자매라는 관계만큼 꾸밈이 없고 솔직해질 수 있는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모의 말은 더욱 진솔하게 다가온다.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안락한 삶을 사는 이모가 실은 너무 힘들었다니. 그 힘듦의 이유가 너무 '평탄해서'라니. 사실 여기까지 읽을 때는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연이어 나오는 이모의 쌍둥이 언니, 즉 화자인 진진의 엄마에 대해 표현한 문장을 읽고 나서야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평생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에 말 안 듣는 자식들을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야 하는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그런데 이모는 이런 삶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지점은 바로 그런 순간들이 아닌가. 아무 사건도, 문제도 없이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삶이 연일 이어진다면 그 또한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새벽같이 나가야 하는 채소 가게 매상이 오르고 단골이 느는 순간, 무능했던 남편이 제 몫을 해내기 시작한 순간, 속 터지게 했던 자식이 철이 드는 순간. 하루가 어떻게 가버렸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졌다고 느끼는 찰나,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숨 쉬게 만드는 진짜 '살아있음' 아닐까.
만일 나에게 두 개의 삶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자문해 본다. 나는 진진의 엄마 삶을 택하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할 이야기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성곽에 갇혀 사는 삶 보다 아침부터 스펙터클하게 돌아가는 소란스러운 삶이 나에겐 더 맞을 테니까.
한때 나도 이모의 삶을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삶, 악다구니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삶. 정갈하게 다려진 옷을 입고, 주로 차를 타로 이동하며, 게걸스럽게 먹는 대신 새 모이처럼 깨작거리는 게 일상인 삶. 하지만 아니다. 그렇게 사는 건 나에게 '살아가는' 감각을 주지 못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양귀자 작가님께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묻고 싶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해야 20여 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찾아 읽는, 팔딱팔딱 살아있는 캐릭터를 구사할 수 있는지. 특히, 이토록 찰진 대사를 쓰는 노하우는 무엇인지. 그 필력에 존경의 마음이 든다. 인터뷰 기사는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한 정적보다 비록 불협화음일지라도 자기 목소리를 힘껏 내지르는 소음이 있는 삶이 나를 진짜 '나'로 살게 한다는 것을, 이모의 마지막 고백을 읽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