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년 차 내가 아는 건 고작 이것뿐이라서

내 발목을 잡힌 운명의 문장들

by 엘슈가

한 번쯤 나도 결혼생활에 대해 쓰고 싶다. 결혼한 지 어느덧 20년 차.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 열기가 한풀 꺾일 때쯤,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될 때쯤, 나도 내 결혼생활에 대해 써보고 싶다.


어떤 톤 앤 매너로 쓰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은 있다. 그 실마리를 이 책에서 찾았다. 결혼생활이라는 주제에 관해 정서적으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정 온도, 무엇보다 '작가'와 '작가의 배우자'가 결혼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고찰이 들어있다.


심지어 '픽' 하고 웃게 만드는 내공까지 있다.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적당한 때가 오면 부부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각 잡고 사색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어쩌다 한 번씩 알려줄 테니까. 마치 이제 알았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툭 치면서. -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

그렇다. 결혼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전제 자체가 무리수다. 대다수는 결혼을 안 해봤거나 해봤어도 한두 번 정도일 테니까. (세 번 이상인 사람도 있을 것) 작가는 말한다. 그러니 각 잡고 사색한들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반대로 각 잡고 사색하지 않더라도 삶이 어쩌다 한 번씩 알려줄 거라고. ('그쪽'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풉하고 웃었다.) 그것도 각 잡고 자리에 앉혀놓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툭 치면서 알려준단다.


그럼 결혼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의 본질은 대체 언제 알 수 있는 걸까? 그 질문에 관한 답 또한 이어진다.

혹은 진심이나 진실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진심이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마지막까지 따라 가보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결혼이 무엇인지 알기엔 아직 나는 멀었고, 더 살아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문장이다.


신혼 초에 '결혼 참 잘했네.'말을 들은 사람 중에 결혼생활을 일찍 끝낸 사람도 있고, '좀 아쉽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 중에 오래도록 천생연분으로 지내는 이들도 있다. 누가 알 수 있을까? 결코 모르는 일이다. 결혼이라는 오묘한 세계는.


그래서 나는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최대한 늦게 쓰려고 한다. 내가 안다고 믿는 것들이 그저 파편에 불과하거나 치기 어린 생각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결혼에 관해 먼저 쓰인, 그러면서도 쿨한 에세이를 읽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아래 같은 보석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 문장에서 배를 쥐고 구르며 웃었다. '작가'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관한 참으로 통쾌한 해석이라서.


배우자가 읽는지 안 읽는지를 일일이 신경 써가면서 글을 쓸 바에는 아예 작가 따위 때려치우는 게 낫다. -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

(여보, 보고 있어? 난 당신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일일이 신경 쓰며 글 쓰다간 한 글자도 쓰지 못할 테니까. 당신도 내가 작가로서 유능해지길 바라잖아. 그러니 보고도 못 본 척해줘?)


하나 분명한 건 있다. 한 생명체를

성인으로 길러내는 시간 동안

같은 지붕 아래 살았으면서도 여전히

결혼이라는 세계가 낯설고 아득하다는 것.


결혼이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라서야

완성되는 한 권의 책이어서 아닐까.


그렇다. 나는 이 문장에 발목을 잡혔다. 이런 발목이라면 기꺼이 잡히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