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대박 상품에 관한 추억
종합 포털사에서 플랫폼은 다 제공하고 컴포넌트만 고르면 되는 획기적인 오픈 쇼핑몰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쇼핑몰의 모습을 갖추기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사람들은 디자이너의 품이 들어간 쇼핑몰과 내 쇼핑몰을 비교해가며 물건을 고를 텐데 너무 허술해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차츰 보완될 것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뭘 팔지?" 감성이 들어간 소품, 즉 액세서리 류로 메인 품목을 정했는데 막상 판매할 제품을 고르려고 하니 막막했다. 나는 남들보다는 꼼꼼한 편이었지만, 탁월하게 세련되었다거나 쇼핑에 일가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쇼핑도 많이 사본 사람이 잘 안다면 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다.
"슈가야, 너랑 다니면 내 지름신을 막을 수 있어서 좋아, 우린 좋은 쇼핑메이트인 것 같아"대학 때 한때 같이 살기도 했었던 친한 언니가 했던 말이었다. 언니는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었다. 단추 한 두 개를 풀면 딱 예쁜 기본 셔츠와 카고 바지를 좋아했다. 문제는 언니는 그 비슷한 옷들을 계속 사들이는 것이었다. "언니, 이 바지는 언니 옷장 2번째 서랍에 있는 거랑 비슷하고, 이건 위쪽 행거에 걸려있는 셔츠랑 비슷해, 그러니 이건 안 사는 게 좋겠어"언니는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다. "헉! 넌 그걸 그렇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런 내가 사람들의 소비를 이끌어내야 하는 쇼핑몰을 운영한다니! 그것도 대면이 아닌 인터넷으로 그들의 욕구를 끌어내야 한다! 이 출발점부터가 숙제였다. 나는 누군가의 소비를 절제시키는 걸 더 잘했던 사람이었는데... 소비를 촉진하고 나아가 부추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니 나는 과연 이 미션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상품으로 쇼핑몰 형태로 글과 사진으로 고객을 매혹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나를 설득하는 일.
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까? 나는 생각 없이 사들이는 소비보다는 정말 오래오래 고민해서 잘 사는 현명한 소비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랬다. 나를 속이기보다는 '정말 이렇게 저렇게 고심해도 잘 샀다고 생각되는 물건'만을 팔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려운 문제를 푼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좋은 제품'을 찾아 사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때는 여름을 앞둔 5월 즈음이었다. 그날도 나는 아이 등교를 도와주고 재빠르게 돌아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편한 복장이라고 해서 마냥 편한 운동복 같은 것은 아니었다. 거래처를 돌 예정이므로, 편하면서도 쉽게 보이지 않는 그런 복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거래처 사장님 또는 직원들은 나와 같은 수많은 소매업자들이 얼마어치 물건을 해가는지 가 중요하지, 뭘 입었는지 "알게 뭐야"겠지만 중요했다. 어쩌면 나에게만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아무튼 전투(?) 복장을 갖춰 입고 장기간 햇볕에 노출되어도 리스크가 적을, 성능 좋은 선크림을 바르고, 역시 입술이 건조하지 않게 하지만 또 너무 기름지지 않은, 색깔이 너무 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도 않은, (평소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 찾아낸) 업무용 립글로스로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동대문 9번 출구로 나서면 동대문 종합시장이 있는데 거기 5층에는 재미있고 신기하고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많다. 쇼핑몰 초창기 실버 주얼리 제품을 취급했을 때 그곳과 남대문 액세서리 상가 거래처들과 꽤 많은 거래를 했다. 예쁜 건 동대문이 예뻤고 다양함과 가격 메리트는 남대문이 우세했다. 내 루트는 동대문 종합상가를 훑어보고 몇 가지 메인을 사입 한 다음 평화시장, 신평화시장, 남평화 시장 순으로 둘러보다가 오는 것이었다.
그날은 여름휴가를 겨낭해서 '라탄 모자'를 사입하기로 마음먹고 동대문을 간 날이었다. 라탄 모자를 사려고 몇 번을 방문했는지 모르겠다. 대충 마음에 들고 대형 쇼핑몰에서 취급하는 듯한 모자를 몇 번이나 사려고 했었지만 100%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마지막까지 주저했던 이유였다. 내가 구매자일 때는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을 요청하면 된다. 그러면 쇼핑몰에서도 '보내준 그대로'반품했으면 환불 처리를 해준다.
그런데 '판매자'로 돌아가면 또 다르다. 어떤 물건을 정했느냐에 따라 해당 시즌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시즌 내내 어떤 거래처와 일을 하고 어떤 고객들과 만나는지도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쇼핑몰들은 어떻게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랬다. 반면 다른 쇼핑몰들은 쉽게 쉽게 사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가 비슷비슷해 보이는 물건을 1000원 차이, 2000원 차이, 유료 배송과 무료배송 차이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러기는 싫었다. 메인 대형 쇼핑몰에서 어떤 상품을 파는지는 알겠지만 그것을 참고하되, 내 쇼핑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대형 쇼핑몰의 다양한 상품구색과 빠른 배송, 빠른 CS 대신 내 작은 온라인 상점에서 물건을 살 이유를 만들어줘야 했다. 그래서 시즌 상품을 사입하러 다니는 시즌에는 몸살이 날 정도였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 팔릴만한 거 골라서 팔면 되는 거 아냐? 남들보다 조금만 싸게 팔아봐~" 거래처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왔다고 하면 남편은 베테랑 쇼핑몰 업자처럼 그렇게나 해맑게 시원시원한 솔루션을 제공했다. '아이고 그게, 그게 아니라고 이 사람아' 하고 싶었지만 가만히 있었던 건 그의 말을 수긍해서가 아니라 내내 돌아다녀 기운이 없어서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거래처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가 구석에, 한 번도 안 가본 끝자락에 있는 작은 도매상이었다. 장사를 하려면 팔 걷고 장화 신고 들어가서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골라내서 귀하게 팔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 가게를 발견했을 때 그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뭐하는 가게인가 싶었다. 딱 봐도 물건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런데, 한구석에 내가 찾던 모자가 있었다. 차양이 올드해 보이게 너무 길지도, 촌스럽게 차양이 너무 짧지도 않은, 딱 좋은 심플한, 한쪽에 라탄 끈 리본이 내추럴하게 묶여있는 기본 라탄 모자. "이거다!"
"최소 수량은 몇 개인가요?" "그런 거 없어요~ 원하는 만큼 가져다 팔아봐요!" 전혀 패션, 의류, 소품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주인분이 찌든 기색 없이 웃으면 답했다. '음... 이 텐션은 뭐지?' 믿기 어려웠지만, 이 가게가 시즌 중간에 없어지랴? 생각하며 깔 별로 2개씩 달라고 했다. "이 모자는 찍찍이 스타일인데 이것도 예뻐요, 이것도 함께 팔아봐요!" 하며 보여주는데, 까다로운 내 눈에도 괜찮아 보이는 상품을 내밀었던 것이다. "네, 그럼 그것도 깔 별로 1개씩 주세요"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어둡고 허름한 그 가게 안에서 말고 나와서 환한 햇볕에 모자를 얼른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햇볕을 받으니 라탄 모자는 더욱 고급스러워 보였고 시원해 보였다. 나라도 당장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모자였다.
나는 쇼핑 조장 능력은 없었어도 다행히 '물건을 보는 안목'은 있었던 모양이다. 쇼핑몰을 오픈한 첫해 첫여름 나의 첫 기획 상품 첫 라탄 모자가 소위 말해 대박이 났다. 그때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블로그 이웃들이 대거 주문을 넣어주셨다. 사진도 조금은 찍을 줄 알았던 터라 감성을 담아 찍은 사진들이 빛을 발했다. 지금은 사진 강의도 많고 센스 있으신 분들, 금손들도 많아 누구나 어느 정도는 사진을 잘 찍는 시대지만 그때는 그 정도 사진을 찍으려면 전문 포터그래퍼에게 맡겨야 했다.
작은 쇼핑몰들이 그러지 못했으니 사진들이 다 제품만 부각이 된 사진 일색이었다. 나는 여백을 중시하는, 감성 사진을 넣어 상세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내 사진들이, 내 제품들이 빛을 발했던 것도 같다.
블로그 이웃들이 하나씩 다 샀다고 생각했는데도 모자 주문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어딘가에 상위 노출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찾아볼 새도 없었다. 택배 포장하기 바빴으니까... 과장을 조금 보태면 밤새 택배를 포장했었던 주간도 있었다. 시즌 상품이라 반품률도 거의 0%에 가까웠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콕을 권장하는 지금과 달리 사람들은 여름이면 대부분 휴가를 떠났다. 휴가를 떠날 때 무엇이 필요할까? 내내 잘 쓸 마음에 드는 모자 하나가 필요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엘슈가모자를 선택해주었다. 나는 정성을 담은 배송으로 보답했다. 모자만 보내는 경우는 없었다. 뭐라도 내가 줄 수 있는 덤을 함께 보냈다. 내 마음도 담아서- 한 시즌 한모델 기준 4~500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직원 없이 오로지 1인이 운영하는 쇼핑몰 치고 이만하면 대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곧 그만두겠지', '인터넷 쇼핑몰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내 작은 온라인 상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잠도 부족했던 날들이었지만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