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면 시작되는 은밀한 일

당신 밤마다 어디야? 왜 누구랑 싸우고 있어?

by 엘슈가

온라인에 작은 점하나 쇼핑몰을 개설하고 판매업을 시작했던 그해 2013년. 처음으로 기획한 첫 시즌 상품 라탄 모자가 대박이 나고서 나는 조금 얼이 나가 있었다. 심플하면서 어디 하나 못생긴 구석이 없는 모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엘슈가모자를 들고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떠났다.


그런데 정작 우리 식구는 난생처음 몇백 개의 택배 포장에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를 둔 덕에 그해 여름에는 휴가를 갈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주문이 그만 들어오겠지? 생각하면 또다시 주문서가 쌓이고, 사람들이 이제 거의 휴가를 갔겠지? 생각하면 또 주문서가 들어왔다. 남편도 아이도 이해해주는 눈치였지만 가끔은 둘이 입을 삐죽거리는 장면을 본 것도 같다.


첫해 첫 시즌을 그렇게 보내고 가을이 왔다. 쇼핑몰을 운영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1.5배는 먼저 시즌을 맞이하는 생활이었다. 어느새 나는 틈틈이 겨울 시즌 상품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해 메인 상품은 울모자와 가죽장갑이었다.


샘플을 보러 다니면서 시즌 상품을 확정하는 시기, 나는 또 몇번의 허탕을 치고 돌아와야 했다. 이번에는 울 모자의 부드러움 차이와 보풀이 일어나는 정도, 같은 블랙이어도 광택이 얼마큼 도는지가 관건이었다. 또 가죽장갑은 50여 종이 넘는 컬러 중에서 메인 컬러 7~8개를 무엇으로 가져갈지가 세상 고민이 되었다.


어느 날은 모자와 장갑을 구매해서 집에 늘어놓는다. 남편이 집에 오면 양복을 갈아입기도 전에 묻는다. '오빠, 이 중에 어떤 컬러가 고급스럽고 예뻐?' 그러면 '음 나는 브라운이랑 네이비? 블랙? 겨울엔 이 세 가지 컬러가 최고이지' 확신에 차서 말한 컬러는 너무나 루틴한 컬러들이었다. 아예 참고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30대 후반의 남성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 면에서 아주 참고가 되는 것이다.



겨울 시즌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퀄리티 좋고 컬러가 다양한 양가죽 장갑을 많은 쇼핑몰에서 판매하지만 당시에는 합리적인 가격대에 판매하는 쇼핑몰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내 제품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컬러도 일반적인 컬러들을 진행하지 않았다. 유행하는 컬러들도 써치 해서 알고 있었지만, 쇼핑몰 아이덴티티에 어울리는 컬러들로, 각 컬러들의 조합도 고려하면서 7~8가지의 컬러를 구비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집 한켠 어딘가에서 내 휴대폰이 몇 차례나 울렸다. 핸드폰 소리를 들은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남편이 내 어깨를 힘차게 흔들어 깨웠다.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음... 몇 시야?' 일어나 보니 남편은 자기 핸드폰과 내 핸드폰을 동시에 손에 쥐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밤중에 일어나 보니 방에 내가 없어서 놀라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벨도 울리지 않고 집안 어디에도 내가 없었단다. 그러다 혹시나 해서 이 방에 들어와 보니 높게 쌓여 있던 택배 상자 안쪽 구석에 내가 쪼그리고 앉아 자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쓰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겪은 일들 중에 잊지 못할 일중 하나다.


왜 굳이 밤 늦게까지 택배 포장을 했냐고 궁금할 수 도 있다. 물량이 많아도 낮에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시간이 있을 수 있는데 혹시 시간을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니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혼자서 제품 소싱, 상품 업로드, 홍보/마케팅, 배송에 cs까지 일당백을 하다 보니 낮에는 낮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거래처에 나가는 일, 동종업계 동료(블로거나 쇼핑몰 운영자들)를 만나 협업도 하고 네트워킹도 하는 일, 사진 찍고 sns 플랫폼에 올리고 소통하는 일, 이곳 저곳에 입점 제안서를 넣고 연락을 돌리는 일 등...


그리고 5~6시가 돼서 돌아오면 아이의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대였다. 아이를 픽업해서 집으로 와 씻기고 책을 준 뒤 나도 간단히 씻고 부랴부랴 저녁을 준비한다.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쉬는 시간을 보내라고 시간을 주고 아이와 조금 놀아준 뒤 두 명을 재우면 그 시간이 대략 10시-11시. 그때부터 나의 또 다른 은밀한(?) 일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이었다. 가죽장갑 주문이 대거 들어왔다. 한 아이디로 여러 개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이 났다. 한, 두건 한 달 내내 주문이 들어오는 것보다 이렇게 많은 양의 주문이 한번에 들어오는 것이 운영에 있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신이 났던 나는 자정부터 문을 여는 거래처에 전화를 했다. 많은 주문량을 거래처에 알리고도 싶었다. 가격 협상도 가능한지 희망에 차 물었던 것 같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편이 잠이 덜 깬 눈을 똥그랗게 뜨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아니 근데 여보, 밤중에 누구랑 싸우는 거야?' 격양된 목소리로 통화를 하니 누군가와 싸우는 줄 알았던 것이다. 나는 거래처에게는 잠시 뒤 전화를 다시 한다고 하고 놀란 남편을 달래느라 한참 애를 썼다. 싸우는 것 아니야~ 이상 없이, 아니 더 잘 되고 있다고 이 사람아!


이익만 추구했다면 사람을 써서 대형 쇼핑몰로 거듭날 수도 있었던 시기였다. 실제 나는 그때 그 기회가 나에게 왔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첫 화면에 신상품 배너가 팡팡 돌아가고 직원들과 매출 그래프에 민감하고, 매일 촬영과 업로드 일정에 쫓기며 사는 '대형 쇼핑몰 운영자'의 일상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 관심은 딴 데 있었다.


상품이 잘 팔리면 팔릴수록 블로그를 열심히 했다. 블로그 외에 온라인 소통 채널을 더 늘렸다. 신상품을 촬영하고 업데이트에 열을 올려도 모자랄 그 시간에 온라인에 일상 이야기를 더 자주 올리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조금은 이상한 운영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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