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천 원에 만원을 냈던 이유
"사장님, 아 그러니까 저는 물건을 오늘 중에 받아야 하는데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슈가님, 급한 마음은 저도 알지만 방법이... 아, 그럼 지하철 택배로 물건을 보내드릴까요? 그러면 되겠네(뚜뚜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생기기 전인 2~3년 전에는 '인플루언서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백화점에 팝업스토어 특별전이 구성되기도 했다. 2018년 가을 나도 영향력 있는 블로거들 20~30팀이 참여하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백화점 팝업스토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전에 비슷한 행사에 참여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만큼 규모가 큰 적은 처음이었던지라 준비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총 5일간의 행사에 직원을 몇 명씩 배치할지, 상품 수량은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 나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지 하나하나 정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상품 수량이 가장 중요했는데, 경험상 행사장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건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을 가능성이 커서 더 신중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행사 첫날 4시경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대박이라고. 준비한 물건의 80%가 동이 나 버린 것이다. 실버 주얼리, 포인트 액세서리와 일상에서 툭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맨투맨 티셔츠 2~3종 입고 백화점까지 갈만한 원피스 2~3종을 준비해 갔는데 특출 나게 예쁘지도, 몸매가 좋은 편도 아닌 편인 주인장인 내가 입고 있는 맨투맨 티셔츠와 원피스가 가장 빠르게 팔려 나갔다. 이날 경험했다. 급한 고객들은 '언니가 입고 있는 거 벗어주세요'라고 하며 벗겨간다는 것을.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을 실감한 하루였다.
휴대용 카드단말기가 바빠질수록 기분이 좋았지만 저녁 시간이 가까워오자 행복한 걱정이 엄습해왔다. '내일 뭐 팔지?' 주요 거래처에 전화를 돌려서 지금 발송할 물건이 있는지 파악 중이었다. 센스 있고 물건 괜찮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액세서리 거래처의 예쁜 사장님이 '지하철 택배'로 물건을 보내준다며 황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뭘 어떻게 보낸다는 것이지?'고객이 앞에 있어서 일단 전화를 끊었지만 머리 한구석에는 물음표가 떠다녔다.
백화점 마감 시간까지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물건의 90%가 소진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머리가 하얗게 센 작은 체구의 한 어르신이 우리 부스를 향해 엉거주춤 걸어 들어오고 계셨다. 행사 브랜드들은 대개 30대~40대를 위한 패션 리빙 육아용품이 주를 이루었기에 단번에 손님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나를 찾아온 분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가만있자... 여기가 엘... 엘슈 맞지요? 이거 동대문에서 온 거예요" 어르신은 종이봉투를 건네시면서 이마에 흐른 땀을 닦듯이 손으로 이마를 훔치셨다. "아. 네 감사합니다~ 요금은 얼마지요?" "그러니까 아직 가을이라고 해도, 여름인 거야, 오는데 얼마나 땀이 흐르던지... 4호선에서 3호선을 갈아타는데, 계단은 왜 그렇게 길고 많던지~ 오늘 유독 힘들었어" "... 아, 네에^^" "응, 요금은 8천 원이에요"하고 중요한 비밀을 말하듯 요금을 알려주시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셨다.
그때였다. 나의 20대 직장 생활할 때가 떠오른 것은. 나는 분명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대기업 근무할 시절 팀으로 일을 할 때가 많았다. 문서 작업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일이 많았지만 어쩌면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컨베이어 벨트 작업자처럼 내 몫의 일을 해서 다음 작업자에게 넘기지 않으면 물건이 생산되지 않듯 팍팍한 일상이었다.
누굴 챙기고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되레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대방이 선을 넘거나 무리한 요구를 조금이라도 한다 싶으면 따박따박 '그건 아니죠'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반대로 나도 타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수시로 스스로 검열하곤 했다.
그런 내가 퇴사를 하고 내 사업을 하면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많다면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을 하면서 그런 내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세상에는 칼같이 자를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오늘은 내가 조금 손해를 보지만 내일도 내가 손해를 보란 법은 없었다. 반대로 오늘은 내가 10원까지 손해를 안 볼고 아득바득 노력했어도 내일은 큰 손해가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길게 보면 내가 조금 손해 보는 편이 결국은 이득이라는 걸 온라인 작은 상점을 운영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어르신께 지체 없이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드렸다. "할아버지 애쓰셨어요. 정말 감사해요~ 조심히 살펴가세요" "가만있자... 거스름 돈을 내가..." 할아버지는 주머니 어딘가에 있을 거스름돈을 찾고 계셨다. "아, 아니에요^^ 금방 가져다주셔서 정말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살펴가세요" "응? 그래도... 그럼 그럴까? 고마워요 애기 엄마. 장사 잘하고. 그럼 이만" 어르신은 그제야 본인의 미션을 다하셨다는 듯 홀가분하게 웃으시면서 유유히 행사장을 나가고 계셨다. 안 그래도 웃는 인상이 활짝 펴지며 뒷모습마저 웃고 계신 듯 그렇게 느껴졌다.
8천 원 요금이지만 거스름돈을 생략하고 1만 원을 받기 위해 저 어르신은 지하철을 타고 오시면서 어떤 말을 준비하며 오셨을까? 그럼에도 며느리 뻘의 젊은 여자가 따박따박 거스름돈을 달라며 빤히 쳐다봤다면 저 어르신 기분이 어땠을까? 저 어르신은 하루에 지하철 택배를 몇 건을 다니실까? 저걸로 생계를 꾸려가시려나? 그저 운동삼아, 용돈 쓰시려고 바람 쐬러 나온 것이면 좋을 텐데...
그나저나 지하철 택배 요금은 지금보다 좀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럼 사람들이 비싸다고 오히려 덜 이용하려나? 백화점 행사로 몸도 마음도 정신없기만 했던 첫날의 나는 딴생각으로 부산까지는 다녀온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나는 가끔 어르신 택배를 이용하지만 한 번도 거스름돈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용할 때마다 그 어르신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2천 원에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그게 뭐라고 하지만 20대의 회사원 시절의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몰랐을 거야. 이것도 퇴사 후 내 일을 하면서 얻은 것일까?
악착같이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게 오히려 손해 일 수 있음을 조금 손해 보는 것이 길게 보면 더 많이 얻는 길임을, 천태만상의 별별 사람들을 만나는 일, 이 작은 온라인 상점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것들 중 하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