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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Oct 25. 2020

때론 셋째를 낳은 택배기사님 때문에 밤을 샌다

우리들의 영업 비밀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은 대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여러 명이 운영해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1인이 멀티플레이어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성수기 때 파트타이머 직원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대체로 나는 후자에 속했다.


혼자서 1인이 쇼핑몰을 운영할 때 좋은 점은 인건비라는 고정 비용이 없다는 점 빼고도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퇴사 후 쇼핑몰만 운영해 온 것이 아니라 블로거, 체험단 등 인플루언서 활동, 에세이스트, 그리고 최근에는 강의까지 다양한 일에 관심도 많고 실제로 실행한 영역도 많았다.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라도 있을 때면 나는 쇼핑몰은 내가 해온 다양한 일 중의 하나라고 소개했다.


2019년은 그동안 콘텐츠 생산자로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1인 브랜딩을 하고, 수익창출까지 연결해 온 노하우에 대한 강의를 론칭하고 활발하게 운영을 시작한 해였다. 원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리기 좋아하는 오지라퍼'에 가까웠는데 '내가 아는 것을 당신들도 알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강의를 했으니 얼마나 열정이 넘쳤을 것인가! 뭐든 해봐야 안다고 나는 그 일이 잘 맞았고 즐거웠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몸이 한 개'인지라 강의에 열을 올리니 아무래도 쇼핑몰 업무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니야, 나는 멀티플레이어로 잘할 수 있을 거야' 다짐도 해보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또 달랐던 것이다. 내 온라인 상점이 여러 명이 운영하는 구조였다면 그런 구멍이 나지 않았을 텐데, 1인 기업의 한계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이런 나의 고민을 블로그로 알게 된 친한 동네 동생을 만나 털어놓기도 했다. "00야 나 스토어가 잘되긴 하는데 요즘 강의를 시작하다 보니 솔직히 쇼핑몰을 신경 쓸 시간이 전보다 많이 없네" "아, 그래요 언니? 그럴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는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해야 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며 훅 치고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내 쇼핑몰 업무, 혹시 도와서 같이 할 생각 있어? 수익 셰어는 말이야..." "아 언니, 저 아들이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이라 올해 내년은 꼼짝 마라 인걸요~~" "그렇지? 맞아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엄마 손이 제일 많이 가지~ 맞아 맞아"


나와 케미도 잘 맞고 분명 무얼 하든 야무지게 할 친구였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도리 없었다. 사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 구인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와 내 쇼핑몰의 감성을 알아줄 또 다른 나'가 필요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모르는 터도 아닌데 그런 사람이 어느 날 자연스레 나타나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파트타이머를 구하는 것은 나중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시즌 아이템 4~5종이 업데이트되어야 할 타이밍에도 나는 쇼핑몰 신규 상품 업데이트에 통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단골 고객들은 블로그 댓글에 사이트 게시판에 신규 상품이 언제 올라오는지 문의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문의하고 있었다. 참 감사하면서도 내 몸은 여전히 한 개인지라,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만 커져가고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로 기억한다. 내 쇼핑몰은 '모자'에 강점이 있었다. 모자는 늘 베스트셀러였다. 5월이면 지금쯤 시즌 뉴 모자를 내어야만 한다! 그날도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택배기사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동을 관할하는 개인사업자이시니 택배 소장님이라고 해도 무방한, 의 카톡 프로필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도토리 같은 아이 2명과 50일이 지났을까? 갓난아이 한 명을 안고 아내와 다섯 가족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다. 


'내가 연락이 소원한 동안 소장님이 셋째를 낳으셨네~~' 과일 기프티콘으로 축하 선물을 보내기 전에 내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이 셋 키우려면 더 열심히 일하시겠네. 저번에 길 가다 마주친 소장님 이마엔 땀방울이 멀찌감치에서도 보였는걸. 그래서 인사를 해도 건성으로 지나치셨구나. 셋째 생각에 다섯이 된 가족을 먹여 살릴 생각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전화 목록에서 여름 모자 메인 거래처를 찾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거래처들은 바빠서 카톡을 보내면 한참 뒤에 답을 하곤 하기에 통화가 빠른 편이었다. "사장님, 엘슈가에요~ 여름 모자 이번 신상품 사진이랑 단가 좀 바로 보내주시고요. 저희 스타일 아시죠? 30대 세련된 스타일이요. 단가는 조금 높아도 괜찮아요~ 한 종류만 보내지 마시고 3~4종 보내주세요. 지금 바로요~ 아시겠죠??" "00야 내일 시간 되니? 간단한 촬영을 좀 도와줘야겠는데, 어려운 건 아니고 간/단/한/거/야~ 우리 집에서 가까운 카페거리 섭외해뒀어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가면 될 것 같아~ 아 내일은 어려워? 그래도 내일 되면 좋을 텐데 일정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그래 바로 줘. 고마워"


우리 택배 소장님은 나와 3년 넘으신 분이다. 이 동네로 이사와 아는 동생의 소개로 알게 된 후로는 바뀐 적이 없다. 이 분을 떠올리면 몇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낮에 오지랖 넓게도 거래처를 활보하고 동종업계 사람들, 블로거들 많이 만나고 또 동네 엄마들은 어떠한가? 린이 친구 엄마들 모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와 4~5시 택배 업무를 시작할 때가 많았다.


다음날 보내도 되었지만 대개의 고객들은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소장님께 픽업 와달라고 문자를 하고 나는 어떨 땐 옷도 갈아입지 않고 택배 업무를 시작한다. 그러다 소장님이 도착하고 나는 "소장님, 오늘은 물량이 많아서 아직 다 못했는데 5분만 딱 5분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하면 그 소장님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안됩니다"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점이 나는 늘 고마웠다. 이건 택배를 바삐 싸느라 칼이나 박스, 박스테이프에 손을 비어본 사람들은 안다, 5분 그분들에게는 긴 시간이고 나에게는 짧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하루에 백여 개 이상, 몇백 개 나가는 파워 셀러도 아니고 택배당 단가를 높게 계약한 고객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장님은 늘 겸손했다. 언젠가 본인의 아내도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 아내분 쇼핑몰의 근황을 물으며 그렇게 지냈다. 우리 택배 소장님은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이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분의 칭찬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꼼꼼하기로 치면 나보다 더한 편이었다. 지금까지 4~5년 일하면서 한 번도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거나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케미가 잘 맞았던 것 아닐까? 나는 나대로 여름이면 늘 비타 500에 깔끔한 마실 것에 가끔 간식을 빼놓지 않고 드렸다. 쓰고 보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런 간식보다 물량을 더 늘리는 것이 소장님께 더 도움이 되었을까? 


그래서였다. 내가 소장님의 셋째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쇼핑몰 업무에 열을 올렸던 것은.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무엇이 중요하겠나? 서로가 잘 되어서 서로의 일을 더 잘 되게 해주는 것. 내가 잘되는 게 파트너가 잘되는 것. 그것은 우리가 4~5년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도 공유해왔던 중요한 영업 비밀 중 하나였다. 밤을 새워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때로는 이런 것이 되기도 한다. 



온라인에 내 주소를 트고 간판을 달고 작은 상점을 운영해온지 8~9년째. 나는 내 상점을 점점 나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 상점을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세월을 축적해가고 있었다.


셋째를 낳은 택배 소장님과 사진 촬영을 도와주는 은이, 여름과 겨울 2번 성수기 때 택배 포장을 도와주는 박 군과 함께 이 상점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들어가 보고 싶은, 막상 들어가 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길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늘 따뜻한 불을 켜 두는, 오래되었어도 깨끗한 그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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