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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작가 Nov 18. 2020

계단에 귀걸이를 떨어뜨리고 다니는 여자

"어 이제 왔어? 저녁은?"

"응 먹었어!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종로에 있는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혼자 살았지만 혼자 살지 않았다. 한 살 터울의 친구, 정확히는 친한 언니와 함께 살았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논현동 4층 빌라의 탑층이었다. 방 두 개, 주방, 거실 하나. 으리으리하지도 광활하게 넓지도 않았지만 깔끔한 집이었다.


각자 출근하고 각자 퇴근하고 식사를 안 했고 시간이 맞으면 가끔 밥을 함께 먹었다. 별일 없는 주말에는 반포 킴스에서 고구마니 브로콜리니 소고기니 잔뜩 사다가 다이어트 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했다. 이 말은 어폐가 있다. 잔뜩 사다가 다이어트식이라니... 그렇지만 사실이었다!


우리는 둘 다 좋은 직장에 다니며 원하는 만큼 벌어 쓰고 있었다. 둘 다 지방 출신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언니는 현재에 투자하는 편이라면 지방 출신의 나는 월급에서 얼마간의 돈을 따로 떼어 적금을 들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우리가 모아놓은 돈은 별반 차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출근하는 날도 있었고 언니가 먼저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 먼저 갈게!"하고 인사하고 나가면 나머지 사람은 "어 그래 잘 다녀와!"하고 가스 벨브를 확인하고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출근하곤 했다.


4층,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살던 탑층까지 포함하면 5층짜리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힐을 신을 때가 많았지만 한창 쌩쌩한 때였다. 문제 될 건 별로 없었다.


출근하느라 정신없이 내려가다 보면 반짝! 하고 내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고 반짝이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귀걸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가 떨어뜨리고 간 한쪽 귀걸이.


언니는 싸고 조잡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를 사더라도 가격보다는 예쁘고 쓸만한 걸 고르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가격이 중요했다. 가격도 높고 좋은 것 말고 가격 대비 좋은 것이 늘 나의 관심사였다. 가격도 높고 좋은 물건을 고르는 건 재미없는 게임 같았다. 반면 가격대비 좋은 물건을 골라내는 것은 그 물건과 나 사이 비밀리에 진행되는 게임, 밀당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것이 언니와 나 우리 둘의 차이점이었는데... 그렇게 가격도 비싸고 좋은 물건을 언니는 떨어뜨리고 회사에 출근한 것이었다.


바닥에서 귀걸이를 집어 들었다. 귀걸이는 드롭 귀걸이 형태로 길어서 귀에 탁 붙는 스타일이 아닌, 살짝 길게 늘어지는 여성스러운 귀걸이였다. 잠금장치도 탁 채우는 형식이 아니라 갈고리 형으로 걸어두는, 특별히 뒷 마개가 없는 스타일의 귀걸이다. 그러니까 어찌하다 보니 언니의 긴 머리 사이에서 탈출을 한 것이겠지. 서둘러 나오다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다가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도 귀걸이를 떨어뜨리고 다닌다거나 하지 않은 나는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언니는 회사에 도착해서 열정적으로 업무를 시작했을 것이다. 타 부서와 회의가 있는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점심을 먹는다든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없어진 귀걸이 한쪽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아, 언제 없어졌지? 오늘 안 하고 왔나?'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꽉 차게 보낸 뒤 들어와 우리가 만났을 때 "언니, 근데 있잖아 오늘 뭐 이상한 일 없었어?”라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을 것이다. “글쎄?”그때도 모르면 좀더 힌트를 주었겠지 “음...귀걸이라든지...?"그러면 언니는 크고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말했을 것이다. "오, 어찌 알았어? 나 귀걸이 잃어버린 거?" 그럼 나는 또 풉 웃으며 말했을 것이다. "그거, 계단에 떨어뜨렸더라고. 내가 주웠잖아. 자 봐봐. 이거 얼마나 비싼 건데~~ 으이궁! 언니 나밖에 없지? 언니 주변에 귀걸이 주워주는 동생은?!”


나와 참 다른 내 친구,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언니.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었다고. 한 명이 결혼하기 전까지. 그리고 그 시간들이 한참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을 이렇게 미소 지으며 회상할 수 있다고.


언니는 지금도 가끔 그런다. 약속 장소에 고급 캐시미어 섞인 코트를 입고 나왔는데 안쪽 포켓 부분에는 어김없이 세탁소에서 붙였음직한 드라이클리닝 라벨이 붙어있다. 그것도 스테이플러 심까지 달린. 그럼 나는 "으이궁 언니 이런 건 떼고 다녀야지, 이거 달려있는지도 몰랐지?"하고 떼어준다. 그럼 언니는 또 "어, 슈가야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하고 크고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만들어 나를 보는 것이다.


언니는 그렇게 귀걸이를 주워주고 드라이클리닝 라벨을 떼어줄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 살고 있다. 나 또한 니트를 입을 때 왜 흰 티셔츠를 받쳐 입는지 이유를 모르고 좋은 자동 우산을 사도 우산 꼭지 부분을 체크할 줄 몰라 가끔 꼭지 부분이 달아난 우산을 해서 들어오는 멋진 남편을 만나 그의 우산 꼭지가 달아나지 않게 조여주며 잘살고 있다.


오늘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러 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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