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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작가 Nov 19. 2020

캘린더 어디에도 없는 날의 은밀한 계획

'설거지 거리를 만들지 않을 거야'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러 나가지 않을 거야'

'정수기 코디님이 오시는 일은 없게 할 거야'

'남편 와이셔츠, 맡기러도 찾으러도 가지 않을 거야'


며칠 전 이를 닦으면서 맹세했던 것들이었다. 그 날은 절대 위의 일들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뭐가 더 있을까? 옆 아파트엔 목요일마다 커다란 장이 섰다. 조용한 것을 우리 동네 장점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가끔 '장이 선다'는 말에 설렘이 있었다. 김이랑 부각을 파는 아저씨는 희한하게도 크고 둥그런 옛날 화로에 김을 구워주는 것이다. 김을 잘라 통에 넣으면서 남편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을 때 '설마 진짜로 크고 무거운 화로를 싣고 다니겠어?' 했지만 사실이었다. 김에서는 불고기 향이 났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 날 장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학교에 갔다. 평소라면 나도 업무를 시작했을 시간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방 침대에 있는, 우리 집에서 가장 포근하고 잠이 잘 오는 이불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온몸에 돌돌 말아서 소파에 풀러 놓았다. 베개도 가지고 나온다. 거실 아일랜드 식탁 위 은은한 스탠드는 켜놓는다. 아침은 남편과 아이랑 먹었기에 배가 고프지 않다. 평소대로 잔잔한 음악이 주로 나오는 라디오는 틀어놓고서 그렇게 소파에서 늘 그래 온양 다시 잠을 청했다.


꿈을 꾸었다. 몇 명이랑 아웅다웅 심하게 말고 사람 사는 냄새나는 정도로 그러다가 깼다. 시계를 보니 11시다. 잠시 생각했다. 배가 고픈가? 아직은 아니다. 일어나 물을 마시고 핸드폰에 알림, 톡 확인, 유튜브 알림, 주식 확인 등을 하고 이틀 전에 빌려온 책을 소파 밑 손이 닿는 곳에 두었다. 이 소설집도 이 날을 겨냥하고 빌린 것이다.


읽어봐야 별다른 깨달음을 주는 것이 없는 소설을 줄기차게 읽는 편은 아니다. 고정관념을 바꿔주던지 감동을 주던지 울리던지 웃기던지. 그것도 내 취향에 맞아야 감동도 받으니 나에게 맞는 소설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인의 지인이 sns에 올린 이 소설은 궁금했다. 지인의 지인이 한 대목을 인용해 올려두었는데, 내 스타일이었다. 이 소설이라면 그 날 어울리겠다 싶었다.


손이 닿는 곳에 두었지만 바로 읽지는 않았다. 30분만 더 자면 개운할 것 같다. 평소에 잠이 너무나 부족했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이 날은 이렇게 보내고 싶었다. 전날과 전전날 연이어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오늘을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두 번째 잠에서도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스커트 정장을 입고 있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점심을 먹고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길은 유추하건대 종로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날은 춥지는 않았지만 흐렸던 날 같다.


"엄마~ 나야 혜숙이. 점심 드셨어요? 응~ 나는 먹었지~ 응~ 엄마 생각나서 전화했지~ 응~ 나야 힘든 일 없지~."

"그래~ 우리 막내구나~ 엄마는 우리 막내 목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좋지~ 엄마 아줌마들이랑 놀러 갔다 왔어. 단풍이 얼마나 예쁘던지. 너~무 좋았지~ 또 가고 싶지~ 우리 막내가 최고지~ 잉 그려. 밥 잘 챙겨 먹고 다니고 아이러브 유 유러브미 피차러브 유우~쪽쪽(수화기 대고 뽀뽀하는 소리)”


엄마와 별 내용이 없는 통화를 한 날에 대한 꿈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다시 기획서를 들여다봐야 하는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종종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딸이었다. 편해 보이는 통화라도 나에게는 룰이 하나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 졸음이 달아나 오후를 버티듯, 엄마 목소리를 듣고 나면 못 버틸 일도 없었던 것이다.


나이 많은 우리 엄마의 막내딸. 무엇이든 네가 최고라고 해주었던 해맑은 엄마. 자라면서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 없지만 늘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했으니까. 엄마는 '아이쿵 우리 숙이가 그럴 줄 알았지~'라며 진위를 떠나 나의 엉덩이부터 두들겨주는 사람이었니까...


내가 성적이 떨어져도 당연히 엄마는 내가 최고라고 해줄 사람이니까 나는 더 잘하고 싶었다. '얼른 집에 가자 엄마가 짬 해놨어 짬' 자꾸만 쨈이라고 해도 짬이라고 했던, 많이 배우진 못했던 우리 엄마에게, 엄마가 가지지 못한 걸 쥐어주는 똑똑한 막내딸이 되고 싶었다.


유년 시절. 그때 반장 엄마로 다른 엄마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학교에 자주 드나들게 만들었던 때 이후로 20대 중반. 일주일에 3번 정도 엄마에게 산뜻한 전화를 했던 그때- 돌이켜보면 그때가 엄마에게 효도를 했던 때가 아닌가 생각 든다.


그 날. 마침 그때에 관한 꿈을 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다시 잠을 청한 이유도 이런 꿈을 꾸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잘만큼 잤으니 일어난다. 새로 온 메시지들을 확인한다. 평소보다 유난히 많은 편이다.  


"축하해! 그 어느 날보다 행복한 하루 보내!"

"생일 축하해 처제. 김서방이랑 린이랑 행복한 시간 보내"

"숙아, 올해는 네가 조금은 더 센티하게 보낼지도 모르겠지만, 밝게 보내길 바라. 축하한다"

"기분 괜찮아? 이따 저녁 맛있는 것 먹자. 끝나고 바로 갈게. 생일 축하하고. -남편"


캘린더에 아무 일정도 잡아두지 않았던 그 날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맞은 내 생일이었다. 매번 생일마다 엄마와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시기 전 그러니까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하고 친목계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시던 엄마의 전성기 때는 늘 내 생일이면 전화를 드렸었다. '엄마, 이렇게 예쁘게(?) 나아주셔서 고마워 엄마. 미역국은 내가 곧 가서 끓여드릴게, 엄마 사랑해 고마워'


이제는 아무리 만지작 거린대도 전화할 데가 없었다. 아무리 부재중 전화를 남긴대도 전화가 올리도 없었다. 대신 ‘숙대리 엄마에게 전활 자주 하네?’ 하고 남들이 물었던, 그러면 씩 웃곤 했던 그날처럼 나는 조용히 엄마와 나만의 암호를 중얼거린다.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거기서 다 지켜보고 있지? 엄마 사랑해. 아이러브유 유러브미 피차러브 유’ 그렇게 테이블 위 캘린더에는 아무 일정도 없었지만 특별한 나의 그 날이, 나와 엄마 사이의 특별한 날이 지나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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