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일 있어요? 피부가 그냥 까칠해 보이네~"
"아... 그래 보여요?"
단골 두부집 사장님은 고우신 분이었다. 인상이 부드럽고 눈매가 선하다. 오래 곱게 살림만 해오셨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장사도 잘하신다. 두부 한모만 사러가도 그렇게 시식을 해보라고 권했다. 콩물 만들 때 나오는거라 돈 안 받아도 된다며 콩비지를 봉지에 척척 담아주곤 했다. 사람들은 저녁 지을 시간이면 두부가게로 몰려왔다. 그런 두부 사장님이 나쁜 의도로 말했을 리 없었다.
두부 한모를 사서 들어오는 길이었다. 1층에서 비밀번호를 누른 뒤 별표만 누르면 문이 열릴 참이었는데 '오늘 저녁은 청국장 해 먹자!'남편의 육성이 들리는 듯했다. 다시 돌아가 남편이 부탁했던 청국장용 된장도 사 오고 나서야 집에 돌아온 저녁이었다.
요즘 자꾸 뭔가를 깜박깜박한다. 이것저것 하는 일도 많은 데다 아이 교육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고 위안해 본다. 그런데 욕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봐도 불과 2~3개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눈 밑은 푹 꺼져있고 칙칙한 피부는 탄력이 없어 축처져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건조함이었다. 거울 속 여자는 얼굴을 매만지면서 물음표를 하고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든 걸까...오늘 밤에 씻을때는 토너만 바르지 말고 에센스도 발라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니면 약속 전날이나 하게 되는 팩이라도 붙여볼까? 하지만 이 욕실을 나가게 되면 이내 잊게 될 거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린엄마 요즘 잠을 통 못 자? 안색이 안 좋다 그냥~~~"
"언니, 나 그래요? 그런가..."
린이 친구 엄마인 J언니는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동네 언니다.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을 때부터 알고 지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퍼줄 때도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티 안 나게 해 주려는 게 느껴진다. 그런 언니가 이야기를 꺼냈을 정도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소리다.
나도 한때는 피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피부 생각을 하면 대학교 때가 떠오른다. 대학생 연합 서클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나는 늘 가야 할 데가 많았다. 무슨 모임이 그렇게 많았는지 신촌에서 혜화동으로 혜화에서 왕십리로 왕십리에서 정릉으로. 이동은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버스를 타면 그렇게 잘 잤다.
공모전 시기에는 종종 밤샐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새벽에 들어갔다가 아침에 대강 씻고 나오는 것이다. 선크림은 꼭 발라야 한다고, 나중에 주근깨 생긴다고, 안 그러면 너 후회한다고 언니가 그렇게 말했어도 나는 맨 얼굴로 다녔다. 그래도 피부는 반짝반짝 빛나기만 했었다. 아마 그 또래는 비슷비슷하지 않았을까? 젊다는 후광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피부가 좋으셨다. 별다른 것을 하지 않는데도 윤이 나고 매끄럽고 적당한 탄력이 있었다. 그건 아주머니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다섯 남매 중에 내가 제일 엄마를 닮았다. 동그란 얼굴, 갈색 눈동자, 좀 튀어나온 광대뼈, 통통한 손이며 통통한 발볼까지. 뭐하나 딱히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는 특징들이지만 나는 엄마를 닮은 내가 좋았다.
나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금까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이유가 퍼뜩 떠올랐다. 그해 가을 유독 여러 사람에게 동시다발적으로 피부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그 이유!
당시 나는 식구들이 자러 들어가는 밤이면 나도 자러 들어갔다가 조용히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오곤 했다. '안 자고 뭐하려고?' 하는 남편의 물음에 '응 할게 남아서.'라고 얼버무렸다. 나와서 뭘 했느냐고. 핸드폰을 켠다. 핸드폰 화면이 가로로 전환되지 않게 세로 고정을 해놓은 뒤 한 웹툰 사이트에 접속했다.
우선 친구가 추천해 준 웹툰을 본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엄마가 어느 날 불현듯 딸의 집에 나타났다는 황당하고 엉뚱하면서도 슬픈 설정의 웹툰이었다. 한번에 여러편 말고 하루 밤에 한편씩 아껴봤다. 웹툰을 보고난뒤 내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본다. 많이는 아니고 역시 하루 밤에 한 두 장. 아껴가며 본다.
그때쯤이면 이미 눈물은 한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작고 부드러운 회색 베개에 흡수되곤 했다. 어둠 속에서도 베개에 얼룩진 부분은 선명히 보였다. 그러다 잠이 들곤 하는 날들이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알고 보니 매우 상관 있는 일이었다. 지난 몇 개월간 내가 밤에 했던 행동을 떠올려보니 왜 피부가 급격히 건조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염도 높은 눈물이 타고 내려간 볼은 그나마 가볍게 발랐던 토너를 씻어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바른 40대의 맨얼굴은 밤새 메마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낮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았어도 화장품을 찾아 바른다든지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언니, 이거 한번 써보실래요?"
"이게 뭐야? 아.... 고마워. 잘 쓸게!"
아는 동생의 얼굴에도 내가 까칠해 보였는지, 그녀가 써보라고 내민 건 앰플 한 상자였다. 그녀가 건네 준 앰플은 마치 처방전대로 지은 약을 받은 것 같았다.
이제 밤마다 웹툰을 보면서, 엄마 사진을 보면서, 울다가 자는 일은 그만해야겠다고. 까칠해져서 다니는 내 얼굴은 엄마도 원하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하는 계절 겨울에도 나는 이렇게 씩 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했다.
그것이 엄마를 보내드리고 처음 맞는 겨울에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사려 깊은 동생은 내 피부 상태도 내 마음도 짐작하고 남았을 것이다. 그녀가 건넨 앰플이 쪼르르 나를 보고 있었다. 하루에 한개씩 눈물이 나려고 하는 시간에 발라주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제 웃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끝-
이미지 설명: 영화 '조제' 예고편 영상 중 캡처 이미지
출처: Warnerbros korea youtube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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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글은 에세이에서 출발하지만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글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한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될수 있겠지요. 일상에서 끌어올린 인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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