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생의 그림을 샀다
"선물로 드린다니까요"
"아니야~ 애써서 그린 작품인데 내가 살게"
"선물로 드릴 수 있는 건데요..."
오랜 인연이었다. 어림잡아 6~7년 되었나? 온라인상으로 만나 오프라인 인연으로 이어진 사이. 매일같이 연락한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연락이 뜸한 때도 있었지만, 드문드문이라도 우리의 관계는 이어지곤 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2~3년 전부터 공방을 차려서 운영해오고 있다. 그런 그녀가 최근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녀의 피드를 통해서였다. 한 영상에서 귀여운 푸들이 캔버스에 그려지는 걸 보고 정말 귀엽다고 순수하게 댓글을 남겼는데, 우리 시댁 강아지 이름 '수수'를 기억했다가 '수수'도 그려주마고 그녀가 답글을 달았더랬다.
살다 보면 '그러고마'하고 잊어버리는 일이 한두 번인가? 나조차도 상대방에게 '그러마' 하고 잊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 일터인데 공방에 육아에 전시에 바쁜 그녀가 그걸 기억했다가 그려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을까? 우리 집 강아지 '수수'로 짐작되는 강아지가 베이지 바탕 캔버스에 그려지는 영상이 그녀의 피드에 올라왔다. 베이지 컬러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그러니까 은영아, 이날, 이날 보자. 내가 너 제품 사진을 촬영해주고, 너는..."
"그럴까요? 근데 언니 나 그날 안될 수도 있는데"
"그래? 안되면 하는 수 없지만 되면 거기서 보자고!"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무렵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퇴사를 했다. 다행히 처음 해보는 사업치고는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한창 블로그가 붐일 때였다. 나는 마음이 가고도 재능이 있는 멋진 인연들을 온라인으로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디자인 마켓 프리마켓 등 다양한 행사 참여 기회 많았다.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백화점 팝업스토어에 참여할 기회도 종종 있었다. 이런 것들은 대개 소개로 이루어졌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나는 내 주변에 그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고, 동시에 나는 그 친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했다. 대개는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이날 이렇게 저렇게 해보지 않겠냐고? 둘 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한번 해보자고.
상대방은 대개 내 제안이라는 이유로 수락했고 우리는 그렇게 일 겸 친목 겸 만나 사진을 찍어주고 모델이 되어주고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인맥도 넓혀가며 그렇게 시간을 쌓아나가곤 했다.
전문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의뢰하면 주절주절 배경 설명 없이 일적으로 깔끔하게 처리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기도 했다. 상대방과 내가 둘 다 좋으려면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그 역시도 대개는 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곤 했다. 또 대개는 일이 잘 성사되곤 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취지로 했던 협업인데 혹시 나는 상대방의 재능을 비용 없이 활용하려고 했었던 건 아닐까? 일종의 재능 교류라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늘 내가 더 노력한다고, 더 준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도 그렇게 느꼈을까? 혹시 반대는 아니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아찔했다.
그 후로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재능 대 재능으로 교환이 가능한 경우라도 먼저 비용을 물었다. 상대방이 두어 차례 "에이, 아니에요~ 그냥 해드릴게요"해도 그게 아니라고 말하며 물었다. 알려주지 않으면 사이트 등에 가서 금액을 보았다.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게 서로에 대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상대방의 재능과 내 재능을 가늠해서 일대 일로 교환하기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제 값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 사람의 재능을 구하는 게 맞았다. 어쩌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리라...
"그림 잘 왔네, 뜯어볼 생각을 하니까 너무 떨린다"
"고마워요~ 요청하신 거 그것도 곧 만들어 드릴게요"
"응 나도 고마워. 또 필요하면 요청할게요 작가님!"
제 값을 치른다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말이 아니다.
제 값을 치른다는 것은 그 사람과 선 긋는다는 것이 아니다.
제 값을 치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밀 것이다.
오래오래 그 사람의 재능과 성품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제 값을 다 주고도 잘 사는 법을 마흔이 넘어 알게 되었다.
이 그림, 앞으로 내가 이사를 다녀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물건으로 남겠지. 얼른 뜯고 싶으면서도 섣불리 뜯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드는 이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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