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들어왔어?"
"아차차.. 마우스, 마우스를 놓고 갔지 뭐야?"
"당신 지금 세 번째 들어온 거야 허허허~"
가까운 나들이나 카페에 갈 때도 필요한 물건들을 잘 챙겨 나가는 편이 좋다. 어디든 그 장소에서 최적의 퍼포먼스를 내는 게 뿌듯했다. 안 나가면 안 나갔지, 이게 없어서 저게 없어서 아쉬워하는 건 삼십 대 중반까지 하도 겪어서 이제는 사양하고 싶다. 또 뭐가 없으면 불편을 감수하기보다 사야 하는 남편을 둬서 아쉬운 사람이 챙겨야 하는 것이다.
노트북 자판을 날아다니며(?) 문서 작업을 해야 하는 날인데 마우스를 놓고 왔다면? 가까운 거리면 집에 다녀왔다. 몰입해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써야 하는데 집에서는 흔한 머리끈을 하필 그날따라 안 가져왔다면? 편의점에서 3개 천 원짜리를 사서 묶어야 마음이 편했다.
주말, 독서관은 오후 5시에 닫으니 지금부터 딱 세 시간. 몰입하고 오자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놈의 마우스를 놓고 와서. 두 번째는 내 손에 익숙해진 성능 좋은 그 볼펜을 두고 와서. 세 번째는 요맘때 바르면 딱 좋은 유수분 밸런스가 좋은 핸드크림을 놓고 와서. 그런 나를 보는 남편의 눈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눈치다. '5시에 온다며, 뭘 그리 챙겨가?'라고 말은 안 했지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작고 자잘한 물건들이라도 가방에 넣다 보면 꽤 무거워진다. 작은 노트북이라도 노트북은 노트북이니까. 에코백을 맨 어깨가 갸우뚱 무겁다. 오늘따라 햇살은 왜 이리 뜨거운지. 집에서부터 구립 도서관까지는 내 걸음으로 15-20분 걸린다. 3시간 몰입하고 와야 하는데 가는 길에서 벌써 20분을 까먹을 예정. 마음이 바쁘다.
가면서 생각한다. 남편 아이 떼놓고 3시간 뭘 하려고 내가 일요일 도서관에 가나? 가서 집중을 못하고 딴짓만 실컷 하다가 집에 오는 건 아닐까? 쾌적한 집 놔두고 이거 무슨 일이란 말이냐? 보통 이렇게 집을 나설 때 내 생각 패턴은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딱 정해진 시간 안에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을 생각해보자.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우린 맛있는 저녁을 (사)먹을 것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농담을 하며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남편은 자기 방에서 좀 더 자신만의 동굴에 머물다가 TV를 보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 것이다. 나는 아이는 숙제 등을 챙기고 잠자리를 봐주고 다음날 아침에 먹을거리를 챙겨놓고 종이책이나 전자책을 보다가 잠이 들것이다.
이건 다 3시간 몰입한 후에야 일어날 일들이었다. 그러니, 딴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도서관에 다녀오자. 저 멀리 도서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서관 정문은 최신식 터치식 자동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도서관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더워서 터치가 안 먹히나? 몸을 이리저리 대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가만, 도서관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리 밖이 대낮이라 대비가 되었다고 치더라도 이상하리만큼 안은 어두웠다. 게다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맨 먼저 내가 한 행동은 핸드폰 잠금 화면을 열어 요일을 확인한 것이었다. 부산하게 돌아다녔던 30대 초 중반을 넘어 40대가 되고 읽고 쓰는 삶을 선택한 요즘. 더 이상 핫플레이스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집 근처 신축의 깨끗하고 한산한 도서관, 또는 그런 동네 카페가 내 기준 핫플이었다. 원래 핫플에 관심이 없었던 남편은 이런 나의 변화를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월요일은 나에게 잠잠한 요일이 되었다. 그 이유는 전국의 모든 도서관이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내가 두 번째로 한 일은 해당 도서관 홈페이지를 포털에 검색해 접속한 것이었다. '아니 휴관이면 휴관이라고 알려줄 것이지...'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단골 생색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 어디에도 휴관 안내는 없었다. 스마트폰이라 팝업이 뜨질 않나? 해서 공지란을 찾아봐도 어디에도 휴관 소식은 없었다.
이쯤 되면 단골 코스프레를 넘어서서 걱정이 들었다. 혹시... 몇 시간 전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건 아닐까? 그래서 저렇게 껌껌하게 불을 꺼둔 것일까? 그렇다면 동네 사람 누가 확진된 거 아냐? 혹시라도 어린아이들 초등학생 들이면 어떡하지? 사서 분들이 우르르 감염된 건 아닐지, 그동안 나는 도서관의 고마움을 이렇게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했다니. 구민이기에 마냥 이용할 줄만 알았지, 조심할 줄은 모르고. 앞으로는 꼭 필요할때만 이용하자. 고마운 줄을 알자. 다짐을 했다.
그나저나 휴관은 언제까지일까? 왜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는 걸까? 흔한 종이 벽보라도 붙여놓으면 나처럼 헛걸음하는 사람이 없으련만. 혹시 누가 안에 한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느새 투명한 유리벽에 얼굴을 붙이고 누가 안에서 지나가지 않나 살펴보고 있었다. 노트북과 두 권의 노트, 내 전용 볼펜이 들어있는 필통. 베르가못 향이 나는 상큼한 핸드크림. 무선 이어폰과 그 케이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챙겨 온 마우스 그리고 혹시 필요할까 해서 챙겨 온 충전잭까지. 에코백 어깨끈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조금 더 머물러도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오후에 나처럼 도서관을 찾는 이가 오늘따라 왜 한 명도 없지?'이쯤 되자 나만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만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나 생각이 들자 상대를 모를 서운함이 몰려왔다.
뚜벅뚜벅 온 길을 거슬러 걸어가는데 퍼뜩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앞에 나처럼 궁금증을 안고 서성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날은 뜨거운데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성실한 도서관 사서 분들을 잠시 원망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더욱.
그날은 6월 6일 현충일이었다. 도서관은 월요일과 국경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에코백 어깨끈이 흘러내려 그립감이 좋은 마우스가 튀어나와 길거리에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