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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7. 2022

짧은 소설 : 누나에 관한 마지막 기억

 누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22년 전 스승의 날이었어. 누나랑 다니던 피아노 학원 앞에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더라. 가족들 중에서는 아마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누나의 살아있는 모습을 봤지 않았나 싶어. 아니 확실해. 그날 누나는 학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었거든.

 누나는 평소처럼 손을 쓰지 않고, 즐겨 신던 플랫슈즈를 벗은 다음 거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가방을 열어젖혔어. 그런데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때처럼 움직임을 멈추더라고. 양손으로 가방 입구를 벌린 채로 말이야. 나는 아직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누나의 옆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나. 누나는 성격이 덜렁대서 툭하면 책이나 필통을 잃어버리곤 했거든. 그래서 학교 시험 볼 때도 맨날 다 풀어놓고선 계산 실수로 한두 문제씩 틀리곤 했어.     


 “왜? 또 뭐 잃어버렸어?”

 소파에 엎드린 채, 누나 옆에서 숙제하던 내가 물었어.

 “아니. 학원 선생님 드릴 선물을 깜빡하고 그대로 가져와버렸네.”

 “멍청해. 그럴 줄 알았다.”

 “누나 금방 다녀올게.”

 누나는 그 말을 뒤로 한 채, 가방에 있던 선물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그게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었지.     


 누나는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가 오셨고, 아빠가 오셨고, 고모가 오셨어. 그리고 친척들 몇 명이 더 우리 집에 오셨던 것 같은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를 제외하고 어른들 모두가 울음을 터뜨렸다는 거야. 나는 왜 울지 않았냐고? 글쎄. 잘 모르겠어. 모든 행동에 의도가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그 행동에 대해서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내 입장에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누나가 죽었다는데, 내가 운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오히려 내 눈에는 울고 있는 어른들이, 힘겹게 억지로 울음을 쥐어짜는 것처럼 보였는걸. 그 울음소리들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단 말이야.

 나는 그래서 어른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누나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전날 배운 슈베르트를 연습했어. ‘마왕’이라는 가곡이었는데, 검은 건반 하나가 날렵하게 같은 음을 반복하는 부분이 제일 좋았어. 뭐랄까. 건반 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치고 싶은 느낌 있잖아.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은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면서 내 연주는 중단됐지. 고개를 돌려보니 고모가, 코가 떨어진 곰 인형을 끌어안은 모습으로 문 앞에 서있었어. 그 인형은 누나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고모가 사준 거였는데. 원래 하얀색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누렇게 때가 탔는데도 누나는, 매일 밤 그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잠들었거든. 눈두덩이가 새빨갛게 부어오른 고모는 그 인형을 품에 안은 채 내 앞으로 걸어오다 털썩 주저앉더니.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어.     


 “아이고, 불쌍한 내 조카. 어쩌자고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을 이렇게...”

 나는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피아노 의자에 앉은 모습 그대로, 양손을 두 무릎 위에 올려놓았어. 고모는 그런 내 앞에 앉아서 말했지.

 “OO아, 이 인형 기억나? 고모가 소영이 사준 건데, 누나가 맨날 코 물어뜯어서 눈이랑 입만 이렇게 멀쩡하잖아. 아이고.. 우리 소영이 불쌍해서 어떡해..”     

 그때 내가 고모를 내려다보며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무(無)였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더라. 마치 감정이 고장 난 환자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다만, 어떠한 의무감 같은 이유로,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한 방을 흘러내렸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응어리 같은 것이 걸린 채로 말이야.     


 아마 그날 이후, 나는 일주일 가까이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 같아.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이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거지. 누나의 장례식은 하루 만에 끝이 났대. 장례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장례식장에 하루 정도 있다가 무덤도 없이 화장했다는데, 누나가 미성년자라서 그렇게 했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참 씁쓸해. 적어도 일반적인 장례식처럼 3일 동안 했다면, 아무리 그 자리에 내가 없었어도 누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이렇게 흐릿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누나한테 미안한 게, 나는 그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거든. 그게 누나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 인식했으면서도 말이야. 누나에 관한 일은 전부 어른들의 몫이었고, 나는 누나의 죽음과는 별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는 집에서 누나가 아끼던 대왕 딱지들을 챙겨 내 장난감 통에 집어넣었어. 왜. 내가 무서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그때 나는 고작 여덟 살이었잖아. ‘죽음’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걸. 누나를 앞으로 볼 수 없다는 말도 그 당시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나한테 와닿지가 않았다고.


 솔직히 내 눈에는 나보다 학교 애들이 더 이상했어. 학교로 돌아가니, 누나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유명 연예인 결혼 소식처럼 떠돌고 있더라. 내 옆자리였던 여자애는, 누나 허리가 옆으로 꺾인 채, 몇 미터씩 튕겨져 나갔다는 얘기를 경찰인 아빠한테서 들었대. 그 얘길 자랑하듯이 여기저기 떠들어대더라. 누나와 같은 반이었던 선배 한 명은 복도에서 내 손목을 붙잡더니, 누나랑 같은 반 친구 어머니가 장례식장에서 웃으면서 떠드는 걸 봤다는 얘기를 나한테 귓속말로 일러주었어. 생각해 보니 이상하지 않아? 나도 몰랐던 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거냐고. 나는 누나가 죽은 그날, 누나가 몇 시간 째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님께 차마 말하지 못했어. 누나가 죽던 날 사실은 누나가 집에 왔었고, 다시 학원으로 향했다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야. 괜히 이야기했다가 부모님만 더 속상해하실 것 같았거든. 선생님께 선물 주려고 되돌아가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죽었다는 걸 알면, 학교에서 누나의 죽음을 사람들이 과장 섞어 떠들어대는 걸 알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어. 아마 그건 누나도 원치 않는 일이었을 거야.

 만약 누나한테 잘못이 있다면 딱 하나. ‘누나가 너무 착했다는 것’ 뿐이야. 누나가 그렇게 된 건 단지 ‘착해서’였다고. 횡단보도였어. 초록 불이었고. 게다가 누나는 뛰지도 않았대. 트럭 기사가 대낮에 음주 운전을 했고 누나는 그렇게 죽었어. 만약 누나가 스승의 날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선생님들 선물을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누나가 죽고 난 뒤, 우리 가족은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어. 밥을 꼭꼭 씹어 먹는 법부터 울고 싶을 때 우는 법까지. 여전히 난 사람들 앞에서 웃는 게 어색할 때가 많지만 괜찮아. 노력하고 있으니까. 하루에 한 번이라도 웃어보기 위해서 말이야. 요즘 내 또래의 어른들은 한 번도 웃지 않는 날이 많다던데. 그래도 나는 웃을 일이 매일 하나씩은 생기더라. 과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은. 적당히 즐거운 삶이지. 벌써 밤 열한시 반이네. 지금 내 모습 좀 봐줄래?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 이렇게 웃고 있어. 그리고.


 방금 전의 웃는다는 문장 하나 쓰고 싶어서. 이렇게. 최선을 다해 웃었어. 그러니까 이제 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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