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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7. 2022

아이유가 전하는 잘 해내는 일

IU 만난 에피소드

 “너의 정체성을 찾고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     


 오랜만에 아이유 씨가 나오는 영상을 봤다. 내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참 위로가 됐다.

 “내 생각들. 내가 좋은 이야기들. 솔직하게 내보였을 때 그냥 그거 좋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러면 그게 잘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이유가 건네는 위로를 옮겨 적은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1993년 5월 16일. 이지은 씨는 내가 생일을 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그녀의 노래 가사에 나이가 언급될 때마다 나도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게 실감이 났다. 그렇다고 팬클럽 가입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냥 ‘이지은’이라는 사람과 그의 노래를 나는 많이 좋아했고. 지금도 많이 좋아한다.    


 처음 이지은 씨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 한 명이 핸드폰이었나 PMP였나. 아무튼 무언가로 교실에서 음악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는 FT아일랜드의 노래 ‘사랑앓이’를 좋아했는데. 곧이어 나오는 여자애를 보면서 내게 말했다. “노래 잘 하지 않냐? 얘 우리랑 동갑이래.” 그것이 가수 아이유를 처음 본 날이었고 그녀의 본명이 내 여동생 이름과 같다는 사실을. 그날 저녁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를 실제로 만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였다. 스무 살. 그녀도 나도 20대가 되었다. 나는 단지 대학생이었고 그녀는 국민 여동생 ‘아이유’였다. 그리고 ‘최강연승 퀴즈쇼’라는 프로그램에서 손범수 아나운서와 공동 MC를 맡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아나운서, 기자를 지망하는 형 누나들과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 부부에게 멘토링을 받는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활동의 일환으로 손범수 선생님께서 내게 방송국 견학을 시켜주던 날. 퀴즈쇼 촬영은 시작됐고 우리는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손범수 선생님과 이지은 씨가 방송 진행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처음 본 그녀는 뭐랄까. 어이없게도 안타까운 감정 비슷한 것을 느낀 것 같다. 그녀는 너무나도 말라 보였다. 그녀의 다리와 내 팔의 굵기가 비슷했다. 어디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허리와 그것보다 가는 발목. 높은 구두를 신고 한 시간 내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촬영이 끝나고 그녀는 매니저와 함께 빠르게 촬영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손범수 아나운서의) 매니저 아저씨가 다급하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면서 IU를 따라나갔다.     


 “미안한테 이 친구들이랑 사진 한 번만 찍어줄 수 있을까요?”     


 손범수 선생님의 매니저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유 씨에게 부탁했다. 일본 콘서트 때문에 서둘러 공항으로 가려던 이지은 씨는 기꺼이 나와 사진을 찍어주었다. 방송국 견학 전의 기대와 달리 이지은 씨가 내 눈앞에 있음에도 반갑거나 설레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진 찍을 때 그녀와 내 어깨가 맞닿는 순간에도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부럽다거나 대화 한 마디라도 나눠보고 싶다거나 혹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 일절도 들지 않았다. ‘계속 앉아있던 나도 지금 이렇게 피곤한데. 얘는 얼마나 피곤할까.’ 나는 그저 어린 애였고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유와 함께 사진을 찍는 순간. 그냥 그 모든 게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는 늘 무기력한 기분이 묻어나왔다. 실패할까 봐 시작하는 게 두렵고 그래서 기꺼이 미루거나 안 하기를 선택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무기력한 기분을 견뎌내는 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최선을 다한 하루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쓰신 글 전부 다 읽어봤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애초에 주제의식이 중구난방 흐려지네요. 익명성 뒤에 숨어서 이런 말 하는 거 저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고작 이런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를 꿈으로 생각한다는 것부터 참 마음속에서부터 반감이 일어납니다 그려.”     


 브런치북 프로젝트 접수하려고  글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악플 따위야 삭제하면 그만이지만 접수 마감이 2주도  남은 상황에서 이런 댓글이 달리니 믿음이 흔들리면서 불안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지은  영상을 보게  것이다. 가수 지망생 후배를 향한 그녀의 격려는 내게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그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나는 악플에 “그래   맞아.”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다음날 악플을 삭제해버렸다. 장문의 비난이 쿨하고 심플하게 지워지는 순간.


 ‘힘을 빼자. 나를 믿고 사랑해주자. 이미 책도 2권 출판해 봤잖아. 글을 쓰든 영상을 만들든. 나와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정한 이야기를 건네자.’     


 힘을 빼고 아이유 씨를 떠올리면서 글 쓰니까 조금 숨통이 트인다. 오늘도 나는 다트 게임을 하듯이 글을 쓰는 데에 성공한 거다. 다트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날아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계속 던지다 보면 아주 가끔. 우연히라도 표적 정중앙에 맞기도 한다. 표적의 정중앙에 박힌 다트가 ‘잘 써진 글’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던지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우연히 정 중앙에 맞은 것들만 골라 엮으면 좋은 글이 모인 책이 되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글쓰기는 10번 연속 10점을 맞춰야 하는 올림픽 양궁 결승전이 아니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달려나가는 마라톤에 가깝다. 포기하지 않고 쓴 수백 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40개 정도 골라 책으로 엮으면 그것을 에세이집이라 우겨도 괜찮을 거라고. 독자들에게 혼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완주해 보려고 한다.     


 오늘 밤에는 아이유의 ‘밤편지’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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