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변호사 만난 에피소드
잠시나마 편집자를 꿈꾼 적이 있었다. 파주 출판 단지에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SBI(서울북인스티튜트) 편집자 양성 과정을 기웃거렸다. 임솔아 작가님의 글쓰기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작가 지망생 분들과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했다. 내게 딱 알맞은 피드백을 건네는 예비 편집자 혹은 작가 지망생들을 보면서. 글을 싸지르는(?) 일보다 잘 읽고 알맞은 조언을 건네는 일이 더 어렵다는 점을 배워나갔다.
“또 다른 이야기는 없어요?”
“열아홉 살 때 고승덕 변호사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교보문고 강남점에서요. 무슨 자기개발서 출판 기념 사인회였어요. 줄이 되게 길기도 했고 저도 변리사 합격을 꿈꾸던 때라서 저도 사인 받았어요.”
“그래서 합격했나요?”
“아니요. 합격했다면 지금 여기 없겠죠.”
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수많은 편집자 지망생분들이 경청 해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도 물론 많지만. 세상의 이야기들을 잘 듣고, 잘 읽고, 잘 기획하는 사람들의 재능은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었다. 벽을 느낀 나는 편집자라는 꿈을 그렇게 내려놓았다. 안녕. 나의 꿈 넘버 6.
고승덕 변호사를 만난 것은 교보문고 강남점에서였다. 변호사님의 자기개발서 출판 기념 사인회가 진행 중이었다. 사인받으려는 줄이 정말 길었다. 고시 3관왕 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시험을 준비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인 받고 싶은 게 당연하다. 사인에 합격의 기운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기분. 나 역시 그의 신간 도서를 집어 들고 줄을 섰다.
“이 책 선물할 건데요. 제가 적어달라는 대로 적어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고승덕 씨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천천히 불러달라고 했다.
“제51회 변리사 시험 수석 합격생 이영관.이라고 적어주세요.”
그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이분한테 줄 건가요? 아는 분이 변리사 시험 수석 합격했나 봐요.”
“아니요. 제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내 당돌한 대답에 고승덕 씨는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합격한 다음 저한테 꼭 좋은 소식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시 3관왕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심정으로 그 손을 양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교보문고 강남점은 열아홉, 스무 살의 내게 또 다른 강의실이자 데이트 장소이자 휴게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에서 내려 교보문고 강남점에 들렸다. (그 당시) 여자친구가 강남역에 있는 편입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서점에서 새로 나온 토플 책을 함께 보거나 편입 관련 도서를 함께 구경한 다음 밥 먹으러 가는 식의 데이트가 반복되었다.
나는 여자친구 생일날 선물로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산 소설책 2권을 선물했는데. 그녀는 내가 건넨 생일 선물을 뜯어보고는 서러워서 울어버렸다. 헤어진 뒤 신병 위로휴가를 나왔는데.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새로운 남자친구 팔짱을 낀 그녀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군대 가기 일주일 전.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따위의 말로 이별 통보한 사람은 나였는데. 서너 달 만에 다른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열아홉의 나는 짐작이나 했을까. 초등학생이었던 내 여동생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대학생이었다는 것을. 서른 살의 내가 여전히 ‘무직자’라는 것을. 어쩌다 보니 나는 아직 서울에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우울증이 심해 글쓰기를 포기한 2020년. 룸메이트는 뭐라도 해보라면서 유튜브를 권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하던 때라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대학원 합격 후 더 여유로워진 나는 반지하 3평 원룸에서의 일상을 영상으로 만들어보았다. 100명도 안 볼 줄 알았는데 한 달 만에 유튜브 총 조회수가 1천을 넘었다. (물론 그중에 100은 내가 핸드폰 공기계, 안 쓰는 노트북까지 동원해서 계속 틀어봐서 그런 것 같다.) 최근에는 20번째 영상을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구독자는 170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꾸준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지난달에 출금한 유튜브 수익은 146,953원. 달러가 1,400원이 넘고 유튜브가 미국 기업인 게 실감이 났다. (유튜브 수익은 달러로 입금된다.)
그렇기에 10년 뒤 이영관의 삶 또한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잘 알지 못하는 후배 한 명이 좋아하는 작가나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강세형, 김민섭, 이슬아? 문학 쪽은 김금희, 임솔아, 황인찬 작가. 그리고 10년 뒤의 나를 좋아해!”
10년 뒤의 나에 관해 딱 한 가지 알 수 있다면.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신지 확인한 다음 곧장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다. “당신이 제 아내인가요?” 그런데 아무도 없고 그게 내 혼잣말이면 어떡하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해적왕을 꿈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싶은 꿈이 있었다. ‘쟤가 왜 저러나’ 싶을 만큼 큰 실수나 잘못을 해도. 주인공 루피에게는 자신을 믿고 격려해 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루피는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전혀 외롭지 않아 보였다. 과거형으로 글을 쓰다 한 가지 깨달았는데. 1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루피를 꿈꾸고 있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항로를 함께 헤쳐나갈 좋은 친구들과 긴 시간 함께 하는 꿈. 당신도 좋은 친구를 많이 얻고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 교육봉사 동아리 동기 모임 술자리에서는 영관이만 아직 학생이니까 내 계비는 깎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친구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대신 총무 일을 내가 계속 하는 것을 조건으로) 나는 감사히 받아들였다.
종종 햇반에 조미김과 계란 후라이, 김치를 저녁밥으로 먹을 때면. “이 한 끼는 너희 덕에 먹는다. 고맙다.” 하면서 인증샷을 동기들 단톡방에 남기기도 한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못난 모습마저 기꺼이 받아주는 친구들이 마냥 고마울 따름. 언젠가 이 6명의 친구들에 대해 글로 쓸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다가 이번 달 계비를 3명만 낸 사실이 생각이 났다. 월요일 새벽 4시. 나는 곤히 잠자고 있을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낸다.
“월요일이네. 다들 즐겁게 출근해라ㅋ 그리고 회비 내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