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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7. 2022

작가를 꿈꾸는 작가였던 사람

 서점에서 누군가가 내 책을 구매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첫 시집이 출판된 직후였는데. 나는 내 책을 교보문고 강남점의 시집 코너 책장에서 꺼낸 다음. 신간 시집들이 표지를 드러내낸 채 반듯하게 누워있는(?)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사진을 몇 장 찍어 부모님에게 보냈다. 내가 작가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을 부모님이 알게 된 것은 책이 출판되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였다.

 자백하듯 시집을 한 권 출판했다고 가족 단톡방에 올리자. 아버지는 어떠한 칭찬도 격려도 하지 않았다. 단지 “요즘 학교 수업은 잘 따라가고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서점에 내 책이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보내고 며칠 지나고 나서야 축하한다는 카톡이 왔다. 아버지와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아버지 친구들한테 자랑이라도 한 건지 아빠 목소리가 명랑하게 느껴졌다.     


 나는 시집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 원래 자리였던 책장에 꽂지 않고 그대로 뒀다. 그리고 근처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내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모든 감각이 선명해졌다. 무심하게 페이지를 촤라락 넘기는 소리. 다시 맨 앞으로 돌아와 저자 소개를 펼쳐드는 손. 목차를 지나 프롤로그를 찬찬히 읽어보는 두 눈까지. 내 책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교보문고 강남점의 재고를 인터넷으로 확인했다. 숫자 1이 0으로 바뀌어있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기로 결정한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시집이 출판된 이후. 나는 책이 놓인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다. 표지가 보이도록 누워 넓은 면적을 노출하고 있는 대형 출판사 신간 도서들이 있는 반면. 똑같이 신간이지만 출판되자마자 구석진 서재 어딘가에 깊게 박혀 찾기 힘든 책들도 있다. 지역 행사에서의 데뷔 무대를 포함해 일 년 동안 행사 몇 번 뛰어 본 게 전부인 소형기획사 가수가,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데뷔 무대를 하는 대형 기획사 아이돌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이러할까. 책장에 꽂힌 가느다란 시집 모서리에 적힌 내용은 책 제목과 저자명이 전부다. 책 디자인이라도 보려면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들어야 한다. 이미 그 책을 사려고 마음먹고 위치를 검색해 본 게 아닌 이상. 책장에 있는 시집이 일면식도 없는 독자에 의해 꺼내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출근하다시피 서점에 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 책을 책장에서 빼서 신간 시집 코너 위에 올려두었다. 그럴 때마다 서점에 한 권뿐인 내 책이 팔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잘 하는 짓은 아니었지만 마냥 기뻤다. 아마 책장에 꽂혀있다면 일주일에 한 권도 채 팔리지 않았을 거다. 책 한 권 팔아서 내가 받는 인세는 800원. 교보문고 강남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 드는 교통비는 2,500원. 나는 손해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돈과 시간을 썼다.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 9호선. 앉지 못하고 계속 서있어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 교보문고 강남점에 1권이었던 내 책의 재고는 2권으로 늘어났다. 덩달아 동네 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한 내 책이 도서관에 입고된 것을 확인했을 때는 정말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작가가 된 지 일 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헤어진 직후 내 책은 절판이 됐다. 나는 혼자가 됐고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출판사 대표님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영관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O출판사입니다. 작가님의 소중한 원고로 O출판사와 인연을 맺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O출판사는 20XX년에 사업을 시작하여 그동안 20종이 넘는 도서를 출간하였습니다.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원고 덕분에 O출판사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O출판사를 운영하였던 OOO 대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되어,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운영하였던 O출판사의 모든 사업내용은 ㈜O출판사로 양도되었습니다. 사업의 운영주체가 바뀜에 따라 일부 도서는 절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아래 도서의 절판을 알려드립니다.

1. 도서명: 바닥 주의 앞으로 밀착

2. 작가: 이영관

3. 현 창고 재고: OOO

4. 절판일: 2018년 OO월 중     

 기출고된 도서 회수에 걸리는 시일은 대략 3개월 내외로 예상됩니다. 도서 회수가 끝나는 시점에 2018년 판매/반품부수 정산 후 저작권사용료가 지급됩니다. 도서 구입을 원하시는 경우 정가의 50%로 구입가능하며, 이후 재고는 외부유통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폐기됩니다. 도서 구입을 원하시는 경우나 문의 사항은 본 메일로 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군대 전역한 직후 대학내일 잡지에서 스무 살 먹은 출판사 대표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책을 만든다는 스무 살의 선한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인터뷰가 실린 부분을 찢어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세 번을 고백했다 차인 후 연락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시를 썼다. 짝사랑의 괴로움에서 비롯된 시가 쌓이고 쌓여 시집 한 권이 될 만큼 모였을 즈음.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친구처럼 만나보자고. 그것이 그녀의 고백이었다. 더 이상 시를 쓸 필요가 없어진 나는 10여 곳의 출판사에 출판 제안서를 보냈다. 한 곳 빼고는 회신조차 오지 않았다. 하나뿐인 답변 또한 거절이었다. 문득 고향 집 서랍에 넣어 둔 스무 살짜리 출판사 대표 인터뷰가 생각이 났다. 나는 곧장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갔다.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8시간 동안 편지를 썼다. 출판 제안이 목적인 글이었지만 고백 편지를 쓰는 심정이었다. 고향 집 창밖으로 해 뜨는 게 보일 즈음 A4용지는 7장을 넘어서고 있었다.     


 당신의 동료가 되고 싶다고. 전에 인터뷰에서 읽은 꿈을 이뤄주기 위해 책을 만든다는 말이 너무 인상 깊어서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뒀었다고. 당신과 지속적으로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언젠가  세상을 밝게 하는 영향력  중심에  사람이 되겠다고.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같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저평가된 우량주 포장하는 글을 무려 8장이나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장 섞인 개수작이었지만. 스물한 살이  출판사 대표님은 나의 개수작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렇게 작가가 되었다.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작가가 아니지만 여전히 작가가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대학원 졸업과 석사논문 완성을 기꺼이 미루고,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나가고 있다. 이것은 서른한 살 즈음의 일이다. 내일은 날씨가 더 추울 것 같다. 아침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따뜻한 하루를 보내길 바라며 기도해야지.


 시리도록 쓸쓸한 어느 가을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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